
웨슬리교회 담임
생물학은 인간을 젖먹이 동물로 분류합니다. 같은 포유류에 속한 동물들과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학적 기능이 매우 비슷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정말 신기하게 다른 동물과 구별됩니다. 그래서 “무엇이 인간을 특별한 동물로 만드는가?”라고 묻습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유전자 차이는 1.2%에 불과하나,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4개의 변종 마이크로RNA가 동물과 사람을 구별짓는 중대한 요인이라고 답했습니다.
작은 유전자 조각 몇 개가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동물과 다른 신체적, 정신적, 경험적 변화를 유발한다는 설명입니다. 이처럼 진화생물학자들조차 인간만의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노력합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을 일종의 기계로,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구분했습니다.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생각과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의식의 표면에 생각하는 이성이 있고, 조금 깊은 곳에는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은 주로 환경에 반응합니다.
환경이 좋으면 좋은 생각이 들고 편안하게 느낍니다. 반면 환경이 불편하면 생각과 감정도 좋지 않습니다.
인간의 더 깊은 심층에는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인간 정신의 가장 크고 깊은 곳에 있으면서 의식적 사고와 행동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기독교 영성은 사람들이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영혼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혼은 단순히 물리적 환경에만 반응하지 않습니다. 영혼은 영적인 세계에 반응합니다. 영혼은 빛을 그리워하고, 영원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합니다.
영혼과 의식은 서로 깊은 관계에 있습니다. 영혼은 뇌(의식)를 매개로 물질 세계에서 활동합니다. 생각과 감정이 영혼을 도와 긍정적 기능을 하면 영적인 세계에 보다 더 잘 반응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반대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생각과 감정이 맨홀 뚜껑처럼 영혼을 제약하고 눌러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가장 무겁고 강력한 방해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입니다. 이 생각과 감정의 뚜껑을 젖혀내야 영혼이 자유롭게 영적 세계에 반응하고 교감하며, 물질세계에도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1:2)고 영혼과 의식의 선순환을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의 뚜껑을 젖혀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가지고 사무엘서에서 전하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골리앗은 블레셋의 장수로 요즘 계산으로 9피트 10인치 쯤 되는 거인입니다. 그가 몸에 걸친 무장도 대단합니다. 그가 40일 동안 아침, 저녁마다 나와서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며 도발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진영의 군사들은 모두 골리앗의 위용에 눌려 크게 놀라고 두려워할 뿐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습니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은 도망하고 숨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이 자리에서 다윗은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외칩니다. 전쟁터에 수많은 군인들이 와 있었지만 아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모욕당하는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이 모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다윗은 이것을 하나님의 싸움이라고 보았습니다.
어쨌든 다윗의 말은 사울 왕에게 전해졌고, 다윗은 사울 왕 앞에 불려 갑니다. 사울이 다윗을 보니까 아직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래서 타이르듯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울은 “할 수 없다” 하고, 다윗은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적장과 환경에 반응하여 그 기세에 눌려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생각과 감정 아래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이 반응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에 반응했습니다.
평소 하수구에 물이 없거나 약할 땐 맨홀 뚜껑이 그대로 있지만, 물이 불어서 수압이 위로 올라오면 맨홀 뚜겅이 들썩이고 젖혀집니다. 영의 세계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영이 약하면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의 감정이 영을 누르고 제압합니다. 그러나 영이 강하면 생각과 감정의 뚜껑을 밀어 올려 젖혀버립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사무엘상16:13)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된 사람은 이 싸움의 실체가 군사적 대결을 넘어 영적 대결임을 알고 영적으로 무장합니다. 하나님의 강한 영이 내 생각과 감정의 뚜껑을 젖혀서 벗겨냅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그러자 이 기운이 그동안 두려움에 몸을 숨기고 도망했던 온 이스라엘 군대에게 퍼져갑니다. 그들 머리에서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과 가슴에 맺힌 두려움을 벗겨내고 승리합니다.
정말 영혼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으면서 생각과 감정, 행동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힘입니다. 여러분의 영이 강건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