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T알링턴 영상학과 교수
한국에 나온 시간이 벌써 한달여가 넘어갑니다. 매년 여름이면 수업을 하기 위해 나오는 한국이지만 올 때마다 변해가는 조국의 모습에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 합니다. 하늘이 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나는 고층 빌딩의 모습들과 더욱 화려해진 길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한국의 모습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그 길거리를 지나가는 수많은 고급 승용차들과 명품으로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왠지 모를 안타까움도 느껴집니다. “룩키즘 (Lookis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 단어에서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듯이 “보여지는 것”에 의해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이에 따라 차별화된 대우를 한다는 의미의 용어 입니다. 이 부정적인 단어가 제법 잘 어울리는 곳이 대한민국이 된 듯 합니다. 어떤 자동차를 타고, 무슨 옷을 입고, 또 외모가 어떤 지에 따라 사람들을 판단하는 경향이 점점 심화 되는 것 같아 마음 한편에 씁쓸함이 가득 고입니다. 특히 젊은 학생들에게 이러한 모습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한양 대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국제 여름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자 강의실에 들어서면 세계 25여개의 나라에서 온 많은 학생들이 저를 바라 봅니다. 그 중에는 한양대에 재학중인 한국 학생들도 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다른 아시아계 학생들 중에서도 금방 눈에 띱니다. 패션쇼에 바로 출연해도 될 만큼 멋진 의상에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지 됩니다. 더운 여름이다 보니 그저 그런 반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맨발에 샌들을 신었으며, 허름한 가방 하나 둘레 메고 강의실에 들어온 제가 교수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려 하는 것도 같습니다. 외국 학생들에게 서는 느껴지지 않는 묘한 의구심을 그들의 모습에서 발견 합니다. “드러나는” 제 모습이 그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언뜻 쉽게 이해가 안가는 말씀들을 발견 하게 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제가 무척 사랑하는 마가 복음 4장 22절의 말씀 입니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여러번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그 당시에는 감춰져 있는 것 같았던 복음의 비밀이 결국에는 드러나고 깨닫게 될 것을 선포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누가 복음에 나오는 병행문을 보면 이 말씀의 의미를 좀 더 쉽게 깨닫게 됩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아니할 것이 없느니라. (누가 복음 8장 17절)”. 예수님이 메시아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복음을 세상에 알리려 하셨던 그 소중한 계획이 드러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또 다른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드러내기 위해서는 숨겨져야 하는 시간이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전혀 다른 가치를 우리들에게 요구합니다. “룩키즘 (Lookism)” 이라는 말이 얘기하는 것처럼, 되도록 빨리 보여주고 나타내라고 합니다. 돈을 좀 벌어 성공했다면 먼저 고급 외제 승용차를 사야 하고, 값비싼 옷을 입어야 하며 정기적으로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가서 관리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나의 성공한 인생과 모습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 깊은 내면 속에는 상처가 쌓이고 그로 인해 번민하게 되는 일은 그 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합니다.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니 까요. 그것으로 인생의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자신을 가꾸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 없이 보여주는 것에만 몰두하다 보면 남는 것은 쓸쓸한 허무함이 아닐까 합니다. 진정한 복음의 힘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숨겨져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도가 쌓여야 하고 말씀속에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감추인”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의 때에 마가복음의 말씀처럼 숨겨진 시간들이 넘쳐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주에 국제 여름 학교의 마지막 수업이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비슷한 의상에 허름한 가방을 둘레 메고 강의실에 들어 갔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쌓이다 보니 화려한 의상과 외모의 한국 학생들도 이제 이런 제 모습에 어느덧 익숙해 졌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예수의 복음과 십자가”를 전했습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수업 시간에 종교를 얘기하냐는 식의 놀라워 하거나 당황해 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제가 전한 복음의 씨앗이 그 누군가의 가슴속에 숨겨져서 언젠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예수를 만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그것이 지난 20년 동안 매년 여름이면 한국을 온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국제 여름학교에서 제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편지를 기억합니다.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속에 말씀하셨던 그 분을 저도 만났습니다.”
이제 한국에 온 두번째 목표를 위해 남은 열흘의 시간을 보냅니다. “팔복 (Beatitude)”의 말씀에 기반을 둔 일곱 번째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입니다. 이번엔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고 있습니다. 상상조차 어려운 북한에서의 삶속에서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분들의 이야기 입니다. 아마 이 작품이 끝나기 까지는 최소한 3년 정도 걸릴 듯 합니다. 그 숨겨진 3년의 시간이 지나면 주님의 “축복”이 완성된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되리라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