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미국에 유학을 온 1990년 중반에는 한국 식료품 가게에 가면 재미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게 한편에 커다란 진열장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식료품이 아니라 엄청난 숫자의 비디오 테이프 (VHS Tape) 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게의 뒤편 사무실에는 수 많은 비디오 재생 기계가 연결되어 있고, 계속해서 비디오 테이프를 복사하고 있었죠. 아마도 나이가 어느 정도 드신 분들은 그 광경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테이프들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한국의 TV 드라마와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이 담겨 있는 테이프였습니다. 장을 보러 오신 많은 한국분들은 구매한 식료품보다도 더 가득 비디오 테이프들을 장바구니에 담아 빌려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밤 늦게 까지 한국 드라마들을 보셨습니다. 아마도 이민 생활에 지친 분들에게 잠시나마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그 시간은 그분들의 유일한 낙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장바구니 가득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올 필요가 없습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온라인 스트리밍 (Online streaming) 서비스로 그저 컴퓨터만 켜도, 아니면 가지고 있는 휴대폰 기기를 통해 누구나 너무나 쉽게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나누었듯이 세계 미디어 시장을 선도할 만큼 그 경쟁력을 갖춘 한국 드라마이다 보니 그 파급 효과는 더욱더 온라인 매체를 통해 극대화 되었고, 제작 되어지는 작품의 편수도 엄청나게 증가 했습니다. 이제는 이 수많은 드라마들 중에 무엇을 볼까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죠.
사단이 선택한 미디어이다 보니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크리스천들에게는 무엇을 보아야 할 지 선택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그냥 인기있다는 드라마라고 선택해서 본다면 나도 모르게 세상의 가치관들을 아무런 여과없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한가지 감사한 것은 드라마 제작 편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보다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과 성경의 가치관을 담고 있는 드라마들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소위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우는 불륜과 물질과 권력의 힘을 강조하는 천편일률적인 내용들을 벗어나 우리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많은 좋은 작품들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로 얼마전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다지 유명한 제작사도, 그리고 잘 알려진 채널에서 방영하지도 않은 이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단지 한국 시청자들에게만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니라 수 많은 외국 시청자들도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시청해서 비영어권 드라마로 조회수 통합 1위에 올랐으니 정말 기적적인 성공 이었습니다. 출연한 배우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소위 “탑 배우”라는 분들이 출연한 것도 아니었는데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자폐증을 가진 “우영우”라는 여성 변호사 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자폐증과 장애인들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을 해 보게 해주었지요.
사실 우리가 조금만 더 예수님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면 소외된 많은 약자들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현재 한국의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등록된 전체 장애인수가 260만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한국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중에 혹은 아는 지인중에 장애인이 없으면 우리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 여기며, 소외된 이분들에 대한 관심을 저버리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이렇게 소외 당하는 약자들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말이죠. 이 드라마는 그래서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어떻게 드라마를 선택하십니까?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가, 아니면 좋아하는 장르인가에 따라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그보다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조금 “이상한 시청자”가 되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이상한 시청자”가 많이 생긴다면, 보다 자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드라마가 만들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올 여름 한국의 제주도에서 “제주 4.3 항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우연히 그곳에 촬영하러 온 “우영우” 제작팀을 만났습니다. 마침 이전에 함께 일하신 분이 그 드라마의 제작팀에 계신 지라 답이 뻔한 질문을 그분께 던졌습니다.
“왜 하필이면 천재 자폐인(Savant Syndrome: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자폐 환자로 전체 자폐증의 1-2%)이 주인공이고, 그것도 박은빈이라는 아름다운 여배우가 연기를 해야 했나요?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해야 그나마 좀더 좋은 시청률이 나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장의 통계도 이를 증명하고요. 정답을 알면서 한 질문이라 그분도 그냥 웃기만 하셨습니다.
그래도 소망해 봅니다. 이 드라마 후속으로 “정말 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가 나오면 좋겠다고요. 그 드라마에는 별로 예쁘지 않은 배우가 연기하는 현실 세계의 모습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장애인이 주인공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청률이 걱정 된다고요? 아니요, 우리에게는 성경의 가치를 믿는 “이상한 시청자”들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이상한 시청자”가 되어 주시길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