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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월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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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재 박사] 안젤리나 졸리와 암 유전자 BRCA1

전동재 박사
Dallas Baptist University 겸임교수

우리에게도 익숙한 할리우드의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동시에 자선가인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는 2007년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어머니를 일찍 떠나 보내야 했다. 7년간의 암 투병 끝에 향년 56세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빈자리는 안젤리나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그녀는 비교적 최근인 2020년에도 “어머니의 강인함 (A mother’s strength)” 이란 글을 뉴욕 타임즈(NYT)에 기고해 모친을 향한 각별한 그리움과 경의를 표한 바 있다.

하지만 그녀에겐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 외에도 한가지 더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모계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암의 계보였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어머니 뿐만 아니라 외할머니와 이모도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것을 목도 하면서 안젤리나는 모계를 통해 전해 내려온 자신의 유전자들 중 암을 유발하는 인자가 있을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암 유전자 검사에서 그녀는 BRCA1이라는 자신의 유전자에 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려진 의학적 소견은 앞으로 유방암과 난소암을 갖게 될 확률이 각각87%와 50% 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안젤리나는 과감하게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선택했다. 그녀는 암이 발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방암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 언젠가는 유방암을 갖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미리 유방 조직을 제거하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인공물을 넣어 유방 조직을 재건하는 과정이 수반되지만 여성으로서 큰 결단이 아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수술은 그녀의 유방암 발병률을 87%에서 5%로 낮추었다.

안젤리나는 이 모든 과정을 비밀로 진행했으나 2013년 5월 14일 뉴욕 타임즈 (NYT)에 “나의 의학적 선택(My medical choice)”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그 내용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자신의 암 가족력 뿐만 아니라 자세한 수술 과정과 현재 자신의 심경도 진솔하게 공유했다. 그녀는 암 유전인자를 지녔기에 언젠가 마주하게 될 냉혹한 현실을 선제적으로 다뤘음을 토로했다.

안젤리나의 이 과감한 선택은 여성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타임지(TIME magazine)에서 이를 안젤리나 효과(The Angelina Effect)라고 언급 했는데 인터넷에서는 유방암 유전자와 같은 키워드 검색이 급증했고 병원에서는 암 유전자 검사율이 급증했다. 실제로 예방적 유방 절제술이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음을 통계적으로 증명하는 학술 논문도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안젤리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2년이 지난 2015년에 자신의 난소와 나팔관을 제거하여 난소암에 대한 예방조치로도 그 결단을 이어갔다.

외할머니로부터 어머니를 거쳐 자신에게 넘어온 암 유전자의 이름은 BRCA1이다. 그것에 의해 안젤리나의 어머니는 그녀의 어머니를 잃었고 안젤리나는 본인의 어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악순환의 고리를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비장한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암 유전자가 장수의 꿈을 좌절 시킬 수는 있어도 어머니의 자녀 사랑을 훼손시킬 수는 없다. 여성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조직을 제거 한다 한들 자녀 사랑을 메마르게 할 수도 없다. 이 부드러우면서 강하고 때론 억척스럽기까지 한 모성애가 암 유전자 검사와 예방적 절제술과 만나면서 나타난 현상이 타임지에서 언급한 안젤리나 효과(The Angelina Effect)의 진정한 실체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럼 BRCA1은 어떤 유전자 일까? BRCA1은1994년 염색체 17번에서 찾아낸 유전자로 유방암 유전자1 (Breast Cancer Gene 1)라는 이름의 약자이다. 그럼 이 유전자는 암을 일으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돌연변이로 인해 이 유전자의 원래 기능이 훼손되면 유방암 발생률이 증가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럼 BRCA1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 자동차가 엑셀에 의해 가고 브레이크에 의해 서는 것처럼 세포 분열도 전암 유전자(Proto-oncogene)들에 의해 진행되고 종양 억제 유전자(Tumor Suppressor Gene) 들에 의해 멈춘다. BRCA1은 다름 아닌 세포 분열에서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종양 억제 유전자이다. 엔진에서 연기가 뿜어 나오고 있는 차를 계속 몰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세포도 자신의 DNA가 손상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세포 분열을 진행 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BRCA1 유전자는 그 단백질을 발현하여 세포 분열 진행을 일단 멈추고 손상된 DNA 복구 작업을 시작한다.

참 고마운 유전자 아닌가? 세포 분열 과정에서 유전체의 안정성(Genome stability)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세포는 크게 세 번에 걸쳐 그 과정을 멈추고 DNA 질적 양적 상태를 점검하게 되는데 BRCA1 은 세 번 모두에 관여한다. 이 기능이 상실되면 세포는 분열을 지속하여 종양을 만들게 되고 주변 조직으로 침투하여 번져 나가면 암이 된다. 세포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목적은 물론 상실된다.

그러고 보면 암적 존재라는 말은 소명에서 벗어나 민폐를 마다하고 자신의 번영만을 위해 사는 인생을 의미 하겠다. 시류를 따라 앞서만 가려 하기 보다 잠시 멈춰서 내가 지향하는 삶이 옳은가를 적어도 세번 생각해야함을 안젤리나의 선택과 암 유전자 BRCA1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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