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D.Min)
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참되고 온전한 예배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배는 습관의 산물이 아니라, 준비된 태도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라고 분명히 말한다.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태도이며, 시간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다.
그래서 예배는 언제나 갱신과 회복을 요구한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순간, 예배는 생명을 잃고 형식만 남는다. 참된 성도와 참된 목회자는 평생 동안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어떻게 예배를 더 잘 드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예배를 통해 은혜받는 일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주일 아침, 부부가 교회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예배의 결론이 어느 정도 보인다. 교회에 오기 전 이미 가정에서부터 예배는 시작이 되었다. 준비 부족한 예배의 실패를 간증하는 내용이다. 주일아침, 남편은 집앞에서 운전대를 잡고 기다리는데, 부인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막상 나왔다 싶으면 다시 무엇인가를 두고 왔다며 들어간다. 남편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운전은 거칠어진다. 부인은 그런 운전이 불만이라며 말을 얹는다. 그 순간 예배는 사라지고 다툼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교회에 도착했지만 주차할 곳이 없고, 그래서 멀리 주차한 탓에 걸어오느라 힘이 든다. 예배당에 들어가니 찬양이 마음에 들지 않고 축축 처지는 느낌이다. 설교 제목도 유독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결국 예배의 실패로 이어지고, 그 실패는 삶의 폭발로 이어진다. 그래서 어떤 목회자는 “모든 부부는 교회 올 때 침묵할지어다”라고 말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은 예배의 본질을 꿰뚫는 매우 정확한 진단이다. 준비된 마음으로 급히 예배에 나아올 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준비되지 못한 예배자의 안타까운 초상이다. 예배는 예배당 문을 여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전날 밤부터 이미 마음은 준비되어야 한다. 마음이 흩어져 있으면 예배는 시작될 수 없다. 무엇을 입을 것인가, 어떤 태도로 나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지나치게 드러내는 옷이나 시선을 끄는 차림은 예배의 집중을 해친다. 옷을 사 입으라는 말이 아니다. 결혼식장에 갈 때 가장 단정한 옷을 고르듯,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도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은 예배자의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또한 예배는 몸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끌리는 소리가 나는 슬리퍼 종류나 맨발은 편안할 수는 있으나, 경건을 세우지는 못한다. 다리를 꼬고 앉거나 의자에 몸을 기대는 태도 역시 마음을 해이하게 만든다. 시아버지 앞에서 다리 꼬고 앉은 며느리가 기본이 안 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 역시 기본의 문제이다. 문화의 차이를 논하기 전에, 지금 내가 누구 앞에 서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예배와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임한다.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느 8:10)이라고 말한다.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힘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때, 그 영광의 빛을 예배자에게 비추어 그 삶을 복되게 인도하신다. 다니엘이 포로지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나 아브라함이 불확실한 길에서도 믿음으로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예배의 중심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타락해 간다. 세상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며 신앙의 토대를 흔든다.
예배가 장난 혹은 연예인 재미나기를 흉내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세대에 참 성도는 더욱 온전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세상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예배자는 더 깊은 예배를 사모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예배를 ‘해치우듯’ 드리는 것에 만족한다. 예배가 은혜의 자리가 아니라 일정 중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은 오히려 준비된 한 사람, 정성으로 예배하는 그 한 사람을 군계일학처럼 세우신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대하 16:9)는 말씀은 지금도 유효하다. 참 예배자를 통해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신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이다. 준비 없이 드려지는 예배 또한 다르지 않다. 말라기 선지자는 준비 없는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책망하신다(말 1장).
어린아이들의 예배 역시 주일 아침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부모의 기도 가운데 경건하게 시작되어야 한다. 예배는 최고의 극상품으로 드려야 할 거룩한 행위이다. 인상을 쓰고 예배할 이유는 없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얼굴을 찌푸릴 이유는 더욱 없다. 어떤 목회자는 설교단에 오르기 전 거울을 보며 일부러 많이 웃는다고 한다. 하나님 앞에 서는 얼굴이 기쁨의 얼굴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얼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시 100:2)는 말씀은 예배자의 표정을 규정하는 말씀이다.
참된 예배, 준비된 예배자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갚으신다. 은혜가 임하고, 심령과 삶이 부요해진다. 예배는 인생의 질서를 회복시킨다. 그 결과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고, 교회는 부흥의 물결 속에서 세상의 저주를 끊어낸다. 이를 위해 새해에는 예배 중심, 교회 중심의 삶에 대한 분명한 결단이 필요하다. 모든 좋은 것은 교회에서, 예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새해, 다시 한번 예배 생활을 결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축복의 문을 여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준비된 모습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준비된 예배로 새해를 시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다. 예배에 성공한 인생은 결국 삶에서도 실패하지 않는다. 새해, 예배로 매주 이륙(26)하는 복이 넘치시기를 기도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