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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4월 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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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앞에서 멍청한 인간들을 보라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잠1:22)

‘지혜’(חכמה, 호크마)는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삶의 경험적인 지식을 가리킵니다. 또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 세상에서 살아 나아갈 수 있는 수완(手腕)의 능력,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런 지혜의 능력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귀중한 선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귀중한 ‘지혜의 능력’은 꼭꼭 숨겨져 있어서 얻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20-21절 말씀을 보니, 지혜가 길거리에서, 또는 광장에서, 성문 어귀에서, 또한 도시 한복판에서 소리 소리를 지르며 부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혜를 얻으라!”
“지혜의 능력을 줄 것이니 오라!”

문제는 지혜가 안 보여서가 아니라, 또는 지혜를 만날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이 지혜의 능력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마음, 또는 자세가 없는 멍청함 때문입니다. 지혜가 보배라고 했는데 보배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첫째는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단순한 자’(simple ones)는, 즉 폭넓고 심도(深度) 깊게 사물과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또는 건성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값진 보배와 걸레 조각을 구분하지 못하여 보배는 제쳐놓고 아무것도 아닌 것, 자신에게 별 유익하지도 않은 것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거만한 자’(scorners)는, 즉 자신이 무슨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는 인간은 지혜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 배웠다고, 알량한 지식 좀 있다고, 자신이 조금 똑똑하다고 스스로 생각하여 ‘지혜의 가르침’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거들먹거리면서(cynicism) 폼 잡고 돌아다닐 뿐입니다.
셋째는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의 ‘미련한 자’(כסיל, 케실)는 잠언 1장에서 세 번째 등장하는 멍청한 인간으로 깨달음과 생각이 둔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인간은 “지혜의 가르침”, “지혜의 교훈”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 줄을 몰라서 지혜의 가르침도 듣지 않고, 지식을 얻으려는 자세도 없고, 배운다는 것 자체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지식 자체를 싫어하다 보니, 지혜가 아무리 손짓을 하고 소리 높여 ‘이리 오라’고 불러도 듣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가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지혜의 능력은 내가 손닿을 수 없는 높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는 질문처럼 언제까지 거만을 떨고 멍청한 인간처럼 살겠습니까?

“주여! 지혜의 배움 앞에서 어리석게 행동하지 말게 하시고, 진리의 가르침 앞에서 거만하거나 건방을 떨지 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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