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잠7:1-2)
여기 ‘지키라’ ‘지키라’ ‘지키라’ ‘간직하라’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도 “내 아들아”라고 부르면서 같은 내용의 말을 거듭 반복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말하고, 또 했던 말을 반복하면 싫어하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하여 어머니께로부터 야단과 책망의 말을 듣게 되면 처음에는 ‘아! 내가 잘못하여 실수 했구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게 됩니다. 두 번째 같은 말을 들으면 ‘나는 왜 이렇게 못난 인간일까’ 자책하며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 번째 같은 말을 듣게 되면 듣기 싫어하는 감정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네 번째 같은 책망을 듣게 되면 짜증이 나게 됩니다. 다섯 번째까지 듣게 되면 반항심에 분노가 폭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반복하면 교훈이 아니라 잔소리로 듣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 말씀에서 ‘지키라’ ‘간직하라’고 거듭 말하는 것은 잔소리 하려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살이에서 반듯이 간직하고 실천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훈련(訓練)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
그렇습니다.
여기 ‘연단하라’는 것은 계속해서 연습하고 연습하며 또 훈련하고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인격적으로 완전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또한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목적을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피눈물 나는 훈련을 쌓아서 자신을 단련시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몸의 건강과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허벅지 근육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허벅지 근육은 한두 번의 트레이닝(training)을 하고, 몇 차례의 헬스 기구를 만진다고 강화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훈련하고 훈련할 때에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경건의 훈련, 영적 성장을 위해서도 반복적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말씀을 통하여 주어지는 말씀, 또는 교훈을 몇 차례 반복하여 들었다고, 또는 읽었다고 건성으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실수 중에 하나는 기독교적 책을 읽다가 성경 구절이 나오면 우리들이 익히 알고, 이미 여러 차례 읽었던 말씀이라고 생각하여 그냥 넘어가려는 습성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 성경 구절이 그곳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인데도 우리의 건방진 태도가 그런 잘못된 습성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아직 훈련이 완성이 되지 않았다면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귀하게 듣고 간직하고 되새김질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의 교훈 앞에서 건방진 태도를 갖지 않고 훈련의 훈련을 거듭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