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잠5:12)
“내가 어찌하여”, 후회와 한탄이 연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세가 망가지고 난 후에 하는 탄식은 과거 스승이 주었던 교훈과 꾸지람을 싫어하고 가볍게 여겼던 자신의 실수를 자인(自認)하는 것입니다.
‘훈계’(무사르)란 잘못된 것을 강제적으로 고쳐주고 교정해 주고자 하는 것이며, ‘꾸지람’(토카하트)이란 교정(矯正)을 목적으로 주어지는 ‘충고’(admonition), ‘징계’(correction)을 가리킵니다.
훈계와 충고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다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배우고 갖추었다 할지라도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결점, 문제점, 악한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변에 훌륭한 스승을 두고, 좋은 선배를 두어서 인생의 교정(矯正)과 훈련(discipline)을 늘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선배님, 저를 서울로 올 수 있게 잘 이끌어주십시오.”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 분은 서울로 올라와서 목회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문이 잘못된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메시지와 그가 출간한 책의 내용을 살펴보니, 기독교 신앙에서 빗나간 율법주의적 요소가 가득하였습니다. 성경도 잘못 해석하였고, 억지와 곡해(曲解)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주변의 교역자들이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기독교 복음적 입장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라는 과제를 생각해서도, 잘못 알고 잘못 믿는 초년 교역자들의 사역을 위해서라도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교훈적 글과 잘못된 문제점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지목하면서 권면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혀 갖지 않고
진심으로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동역자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교훈과 충고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절하였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이 자기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금방 찾아가서 설득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저에게는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오고 찾아와야 할 사람이, 감감무소식이었고, 거절의 행동을 취하며, 내가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까 전전긍긍하는 태도만 보였습니다.
여기 ‘가볍게 여기는 것’은 비웃으면서 경멸하는 행동이며, ‘싫어하는 것’은 머리를 흔들며 내치는 강한 거절의 모습인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에게는 “아, 어쩌자고 내가 그분들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가? 어쩌자고 절제된 삶을 거절했던가?”(Oh, why didn’t I do what they told me? Why did I reject a disciplined life?)라고 후회하며 통곡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주님, 훈계와 충고 앞에서 강퍅하거나 건방 떨지 말게 하옵소서. 겸손히 받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