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잠6:30-31)
우리가 잘 아는 명작(名作)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쟝발쟝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혼자 된 누이의 일곱 조카들을 돌보면서 가난과 굶주림에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빵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빵을 보는 순간 빵을 훔쳐 도망가다가 결국 잡히고 맙니다. 그는 배고픔 때문에 빵 하나 훔친 죄로 시작하여 혹독한 감옥에서 19년 동안 노예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19세가 프랑스 사회가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얼마나 냉정하고 가혹한 사회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절대적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잉글랜드에서 작성된 어느 통계에 의하면 런던에서 발생하는 절도 사건들 다섯 중에서 넷의 직접적인 동기는 배고픔, 가난에 굶주린 백성들이 벌인 절도 사건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절대적 빈곤,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굶주린 배를 채우려는 목적으로 도둑질을 하면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먹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욕구 때문에 도둑질을 한 것은 그 자신에게도 문제는 있겠지만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지 않은 사회적 책임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절대적 빈곤 때문에 발생하는 도둑질이 아니라 상대적 가난을 가장하여 벌어지는 탐욕의 도적질인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탐하는 것, 다른 사람의 주머니의 것을 훔치려는 것, 남의 사업을 빼앗으려는 것, 남의 아내, 남의 남편을 빼앗으려는 것… 등등은 결코 절대적 필요 때문에 벌어지는 도둑질이 아닌 것입니다. 이기적 탐욕이 발동하여 더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훔쳐서는 안 될 도적질을 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고, 막강한 천연 자원을 가진 나라가 무엇이 부족하여 이웃 나라를 침략하고 빼앗고 점령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더러운 국가적 탐욕일 뿐입니다.
가질 만큼 부를 누리고 있고, 고대광실과 같은 집안에 사는 사람이 무엇이 부족하다고 법인카드를 이용하여 국민의 돈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까? 치사한 도적놈 심보 때문입니다.
세상 남부럽지 않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분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거대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입니까?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쌓아두려는 강도의 기질 때문일 뿐입니다.
성공할 만큼 성공의 자리까지 올라간 권력자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행정부의 기밀을 뽑아다가 투기 행각을 벌이는 것입니까? 본래부터 도적질을 해 왔기 때문에 그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해서인 것입니다.
“주님, 우리 사회에는 불의와 불법으로 도적질하는 도적놈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로 진실과 정직이 기반이 되는 세상을 건설하는 역군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