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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5월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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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엽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38)

이정엽 목사
뉴비전교회 담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재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성령님을 따라 우리가 걸어가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심을 말씀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을 따라 행하라”(갈 5:16)고 명령하고 있다. 성령님을 따라 행하라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라는 것이고(갈 5:18), 성령님으로 걸어가라는 것이다(갈 5:25).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일은 모든 신자들이 걷고 행할 명령이다.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가 육체의 소욕, 죄악된 욕심을 따라 행하고 되고 그래서 온갖 육체의 일, 곧 죄를 짓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났고, 그의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모든 신자들은 반드시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에서 “행하라”는 현재 진행형 동사이다. 계속해서 걸어가라는 명령이다. 우리 말은 행하라고 번역을 했지만 걸으라(walk)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신자의 삶이란 하루하루 한 걸음씩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걸어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왕창 걷고, 점프해서 날아가고, 월반하는 삶이 아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 한 걸음씩 걸어갈 때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패턴이 되고, 계속되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어쩌다 한 번 생각나고 은혜 받으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매일 매 순간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함께 걷고 동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걸으라고 말씀하신다(엡 4:1-2). 믿음으로 걸어가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걷지 말라고 말씀하신다(고후 5:7).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선한 일들을 위해 걸어가라고 말씀하신다(엡 2:10). 우리는 이방인들, 불신자들이 걸어가는 것처럼 걸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엡 4:17).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걸어가라고 말씀하신다(엡 5:2). 어둠의 자녀, 사단의 자녀처럼 어두움 속을 걸어가지 말고, 이제는 빛의 자녀들이 되었으니 빛의 자녀답게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고 말씀하신다(엡 5:8). 아울러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걸어가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요삼 1:4).

이처럼 우리는 매일 겸손과 온유, 믿음과 선한 일과 사랑과 빛과 진리 가운데로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이 우리에게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성령님을 따라 걸어감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겸손과 온유와 믿음과 선행과 사랑과 빛과 진리를 가져오는 것은 성령님이시다. 이 모든 것은 성령님 안에서 걸을 때, 성령님과 함께 걸을 때, 그리고 성령님으로 걸을 때 가능한 것이다.

왜 우리가 매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걸어가야 하는가? 그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수시로 우리 안에서 떠오르고 생각나고 마음이 가고 따라가고 싶은 것이 다름 아닌 우리의 육체의 소욕과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고 말씀하신다.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따라 걸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씀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신자라 할지라도 우리의 죄의 본성과 습관이 우리의 삶에 여전히 뿌리깊게 잡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다. 죄의 욕심, 육신의 소욕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런데 그 육체의 소욕과 욕심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비결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주의할 것은 성경은 결단코 육체의 소욕과 욕심이 우리 안에 생기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런 소욕과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 나름대로 수행도 쌓고 속세를 떠나 산속에 들어가 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 안에 그런 소욕과 욕심이 생긴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그것을 이길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의 소욕과 욕심이 아니라, 성령님의 소욕,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인도를 따라 걷는 자들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육체의 소욕이나 욕심을 이루지 않을 수 있는가? 어떻게 죄의 욕심과 소욕을 따르거나 이루지 않고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가? 성령님을 따라 걸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 복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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