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디옥교회 협동목사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군 복무 중 고단한 시간을 견디며 내뱉는 이 말 속에는 시간은 결국 흐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저 견뎌내야 할 무의미한 시간이라는 체념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시간도 우리에게 의미 없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능동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삼아 살아가야 합니다.
한 동화가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던 한 청년은 초조함에 “한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고 중얼거립니다. 그 순간 나타난 요정은 청년의 셔츠 앞 단추를 살짝 돌려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단추를 돌리자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고, 그는 곧바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후에도 그는 단추를 돌려 결혼을 앞당기고, 자녀를 얻고, 성공을 이루어냅니다.
시간이 걸리는 모든 과정을 그는 단추 한 번에 건너뜁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아직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했는데요!” 그는 되돌아가고 싶어 요정에게 애원했지만 요정은 냉정하게 말합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단추는 뒤로 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오늘”은 선물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교훈을 얻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과거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과거에 갇힌 사람이 되고, 미래에만 기대어 오늘을 등한시하면 그 삶은 공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빨리 성장하고, 빨리 성공하고,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조급함 속에서 사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인생이라는 훈련은, 그 과정 자체에 의미와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묵묵히, 성실하게, 땀 흘려 하루하루를 살아낼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 시간들이 참된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격은 중요한 시간에 드러나지만 인격의 형성은 평범한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삶은 많은 경우 고되고 외롭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얼른 지나가길 바라며 내일만을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길 원치 않으십니다. 고된 순간에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깨달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시간을 헛되이 흘려 보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는 중 군대를 가게 되었고, 경찰 군악대에 지원해 합격하면서 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이 음악 전공자였고, 저는 비전공자였습니다. 게다가 제대 후에도 음악을 계속할 생각은 없었기에 제게 주어진 시간은 겉보기에 비효율적인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했습니다. “어차피 음악할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말도 들었지만, 나에게 맡겨진 32개월을 최선을 다해 보낸 결과 전공자들과 연주를 해도 민폐를 끼치지 않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 삶에 귀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운동, 악기, 기술, 어떤 것이든지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경험을 넘어 인생의 자산이 됩니다. 세탁소에 일하신다면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다림질된 옷을 만들어 보십시오. 식당에서 요리를 하신다면 오늘 내가 만든 국수가 세상에게 가장 맛있는 한 그릇이라 여기고 정성을 다해 보십시오.
오늘의 수고는 내일을 위한 투자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삶입니다. 육아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아이가 기어 다닐 땐 빨리 걸었으면 하고, 걸음을 시작하면 제발 좀 더 분별력을 갖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각 시기마다의 귀여움과 기쁨은 그때만의 선물입니다.
저의 아내도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어 하루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지만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이제는 자라는 것이 아깝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단한 육아속에도 그 순간순간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지나간 후에야 깨닫습니다. 시간을 앞당기기보다는 그 시간을 살아내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복입니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라는 말은 오늘이라는 그 시간의 무거움을, 그 뜨겁고 치열한 성실함을, 그리고 그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합니다.
하나님은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살았던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요셉은 하루아침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지만, 사실 하나님은 요셉을 날마다 훈련시키고 계셨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모든 일을 맡으며 행정과 조직 운영을 익혔고, 감옥(왕의 죄수를 가두는)에서는 이집트의 정치 구조와 궁중의 문화를 체득했습니다.(창세기 39장). 그는 억울한 처지 속에서도 자신이 노예로 보낸 시간과 죄수라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체념하고 단순히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능동적인 삶이었습니다.
모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왕궁에서의 40년 뿐만 아니라 40년의 광야에서의 목동생활은 하나님의 준비기간이었으며 이스라엘을 이끌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했던 시간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인내와 겸손을 배웠고, 결국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빚어졌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23:10)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자, 내일을 위한 훈련의 장입니다. 그 시간을 감사함으로 땀 흘리며 묵묵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믿음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이자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 원고의 내용은 전적으로 저자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