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빛교회 담임
이번 가을에 교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UTA에서 한국 교환학생 네 명이 교회를 방문했다. 그런데, 그 중에 세 명은 교회에 한 번도 나가 본적이 없는 청년들이었다. 조금은 충격이었다. 이전의 청년들 같았으면 한 번 쯤은 친구 따라 교회에 나가본 경험이 있을 텐데, 요즘 청년들이 얼마나 교회에 관심이 없는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청년들에게 무관심의 대상을 넘어서, 사라져야 할 기득권 세력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은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공격적으로 보도하는 한국의 매스컴에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결국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손해보고, 희생하며 살지 않으려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교환 학생들이 머무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교회에 대한 이들의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어지고, 또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기 위하여 최선으로 섬겼다. 여러 번 집으로 초대하여 극진히 대접하고, 또 이들을 위하여 계속 기도했다.
이렇게 3개월이 지나고, 떠나는 마지막날 교환학생들이 이별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런데, 그 곡은 우리 교회가 매주 예배 때 드리는 폐회 찬양곡 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주 이 찬양을 듣다 보니 곡과 가사를 다 외운 것이다.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이 불신 청년들의 이별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너무 감격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한 학생은 예배 때 부르는 찬양이 자신의 마음을 힐링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 교회를 방문했을 때는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 처럼 찬양도 설교도 듣지 않는 것 같았고,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런데, 사실은 안 듣는 것처럼 하면서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에 대한 이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복음에 대하여 굳게 닫힌 마음을 연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들을 섬기고자 기꺼이 드린 시간과 물질을 헌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교회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바뀌고, 복음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한국교회가 다시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Clue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기꺼이 손해보기를 선택하고, 섬기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대형교회로 몰리고 있다. 큰 교회를 섬기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열심히 섬기며, 제자 삼는 사명에 헌신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몰려가는 대형교회에도 여전히 섬기는 일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섬기는 일에 헌신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더 이상 인간관계에서 시험에 들고 싶지 않고, 섬겨야 하는 수고의 고통을 피하여, 예배만 드리고, 은혜만 받고 싶다는 것이다.
2000년 전 성탄절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가장 사랑했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셨고, 성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영적인 고통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고통을 기꺼이 우리를 위해 선택해 주셨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했던 침례(세례)요한, 불과 16세(추정)에 불과했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 아기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증거했던 노인 시므온도 기꺼이 자신을 드렸다. 성탄절이 성탄절 되게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다.
이처럼 성탄절의 스피릿(Spirit)은 받는 것이 아니라 헌신하는 것이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 성도들은 다시 한번 예수님과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사람들의 헌신의 스피릿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감사와 기쁨을 넘어서 헌신의 스피릿을 가지고 우리 성도들이 기꺼이 자신을 드리기로 결단할 때, 교회는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쁨의 소식을 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