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 이상재 선생님이라고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일제 시대 때 기독교 독립운동가로 지금도 존경받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사실 본래부터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교 신자였었는데, 항일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독방에 갇혀서 외롭게 지내는데, 어느 날 그 감옥 안의 마루 틈 사이에 왠 쪽지 하나가 끼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그 쪽지를 꺼내서 읽어보니까 신약 성경의 산상수훈이 적혀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내용을 보니까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 뺨을 돌려대라,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어라, 5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10리까지 가라’는 말씀이 쓰여져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너무도 허무 맹랑한 소리인 것 같아 헛 웃음을 쳤다는 겁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지!’ 하고 비웃으면서 그 쪽지를 다시 마루 틈 사이에 끼워 넣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그냥 있자니 너무 심심해서 다시 그 성경 쪽지를 꺼내 보았습니다. 꺼내 보고 또 비웃고는 다시 꽂아 넣고, 그러다가 다시 꺼내 보고 또 비웃고는 다시 꽂아 넣고 …. 이렇게 수백 번을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주야로 신약성경의 산상수훈 부분을 자신도 모르게 계속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재 선생님의 마음이 뭔가 이상해 지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교회에 나가 예배하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말씀을 읽고, 이후 한국 역사에 또 한국 기독교에 위대한 사람으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상재 선생님이 아주 신비한 체험을 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아닙니다. 또 뭔가 특별한 기적이 일어나서 예수를 만나게 된 것도 아닙니다. 말씀 앞에 있다 보니, 말씀을 가까이 대하다 보니, 말씀을 읽다보니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또는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뭔가 신비한 체험일 거라는 그런 기대감이나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일반적이고 그렇다보니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는 것은 아주 특별한 몇몇 사람에게만 허락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20년 넘게 다닌 사람들도 가끔씩 “목사님~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요? 저는 아직 못 만난 것 같아요” 하는 고백을 하면서 궁금증이나 회의감에 빠질 수도 있는 겁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오셨다” 라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우선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 묵상을 통해 예수님과 실제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자라날 때 매일 보약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하루 평범한 밥을 먹고 자라듯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 그리고 믿음이 성장하는 것도 크고 놀라운 어떤 신비하고 특별한 체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말씀 묵상을 통해서, 그리고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평소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탄의 시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20년을 목회하다보니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예배와 말씀을 가까이하고 사는 사람들, 즉 예배 가운데 말씀을 듣고 매일 말씀 가운데 주님을 가까이 하고 사는 사람들은 잘 불평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불평이 없을 수는 없지만 불평을 기쁨으로 바꾸는 능력이 말씀과 예배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시험이 들은 것 같다” 느끼는 순간 먼저 말씀을 붙드는 모습이 있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주님과 머무르고, 말씀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으로 주님과 동행하면서 회복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성경에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이 ‘마르다’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집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마르다가 원했던 그 예수님이 집에 오셨는데 무슨 일인지 마르다가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성경 내용을 보면 마르다가 왜 불평했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마르다의 불평의 근본적인 원인을 성경은 “마음이 분주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초대하고 예수님이 그의 집에 들어 오셨는데, 마르다는 예수님과 머무르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예수님보다 먼저 봉사하고 준비하는데 마음이 빼앗겨 있습니다. 마음이 분주하다보니 예수님 곁에 있을 수 없습니다. 빨리 자신의 일을 먼저 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예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반면 마리아를 보면 신약 성경에 그녀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3번 나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첫 모습은 언제나 주님 발 앞에 있는 모습입니다. 결국 주님의 말씀에 있다보니, 먼저 말씀에 머무르다보니, 먼저 말씀을 가까이 하다보니, 기쁨으로 향유옥합을 깨드리게 되는 겁니다. 기쁨으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겁니다.
20년간 목회를 하면서 보니까, 실제로 봉사하다가 불평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마음이 분주하여’ 입니다. 예배를 신실하게 드리지도, 말씀을 가까이 대하지도 않는 모습입니다. 가만히 보면 실제 향유옥합을 깨뜨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배와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임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육신이 말씀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더라는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