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한 대형교회는 금년 한 해 동안의 표어를 ‘거룩과 성숙’으로 정했는데, 이 표어는 비단 어느 한 교회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이 소망해야 할 표어라고 생각된다. 특별히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분들이라면 또한 후반전 인생을 달려가고 있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거룩과 성숙’의 인생 여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믿음 안에서의 웰에이징이 무엇이겠는가? 나이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들의 성품이 변화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월이 갈수록 하나님의 뜻을 좇아 더욱 거룩하고 성숙된 삶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하게 된다.
그런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자성의 시간, 자기 객관화의 실험이 필요하다. 자신의 언행과 습관 그리고 태도에 대해 마냥 옳다는 생각을 멈추고 객관적으로 자기를 평가하고 돌아보는 훈련과 분석이 필요하다.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의 단점은 무엇인가? 나의 성격 가운데 정말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의 언어 습관 가운데 버려야 할 것은? 자녀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무엇인가?’ 등등 많은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답해보면 좋겠다. 세밀한 진단이 있어야 올바른 처방과 시술을 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다들 공감은 하지만 막상 자기 객관화를 시도하는 것은 우리 본성과 반대되는 일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반응을 하기 마련인데, 이때 누군가 자신에 대해 지적을 하거나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얘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하지 상대방의 얘기를 수용적인 입장에서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객관적인 자기 발견과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고집스러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사람의 성격과 생각이 바뀌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 있다. 창세기 20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가 되어 그랄 땅으로 거처를 옮긴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자기의 여동생이라고 그랄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라” (창20:11). 아마 익숙하게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십 년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던 아브라함이 그때도 똑같은 이유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아내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알렸던 것이다. 이십 년 전이나 이십 년 후나 아브라함의 성품과 행동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로 인해 자칫 유부녀를 취할 뻔했던 그랄 왕이 구십 구 세의 아브라함에게 따끔한 충고를 한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창20:9) 특별히 뒷부분에 있는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는 그랄 왕의 충고가 인상적이다. 이 부분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당신은 나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거요’라고 되어 있다. 종합해보면 아브라함이 ‘합당하지 않은 일’을 했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향해 던진 그랄 왕의 충고는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모든 이들이 되새겨야 할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아지면 저절로 더 지혜롭고 올바른 어른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그와 반대로 누군가에게 ‘합당하지 않은 일’을 하거나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서도 전혀 모르며 살 가능성이 더 클지 모른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신에게 반듯한 충고를 해줄 사람도 주변엔 적어진다. 자발적으로 자신을 객관화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무심하고 무지한 채로 여전히 ‘합당하지 않은 일’을 반복하며 주변 사람들 가슴에 생채기만 더하는 세월만 늘어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기를 되돌아보며 새롭게 변화되어가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필자가 내리는 결론은 이것이다. 인생후반전에는 예배와 말씀 읽기에 이전보다 더 지극한 정성을 들여야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신을 돌아보고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시간과 기회가 바로 예배 드릴 때와 말씀을 읽을 때라는 목회경험 때문이다.
인생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창조주 하나님 앞에선 ‘나이든 자녀’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선 이 나이들어가는 자녀들을 향해 ‘합당하지 않은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끊임없이 가르치시고 깨닫게 해주신다. 그래서 더 나은 ‘어른’이 되라는 것이다. 세월은 빨리 지나간다. 인생반환점을 돌았다면 이젠 더 미룰 여지도 없다. 참된 예배와 말씀 가운데 ‘합당하지 못한 일, 해서는 안될 일’을 벗어버리고 ‘거룩과 성숙’으로 나아가는 웰에이징의 여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