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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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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재 교수] 옥시토신과 모성애

전동재 박사 UT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콜레스테롤 대사관련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현재 Dallas Baptist University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에게 생명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40주의 임신기간이 끝이 나면 태아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한다. 출산은 엄마와 태아 사이에서의 긴밀한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태아는 비좁아진 공간에서 머리로 엄마의 자궁경부를 밀기 시작한다. 이 자극은 자궁과 뇌사이를 연결하는 부교감신경을 통해 엄마 뇌의 시상하부로 전달된다. 시상하부 중에서도Supraoptic Nucleus (SON) 와 Paraventricular Nucleus(PVN)라 불리는 곳이 이자극에 반응하여 “자궁수축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옥시토신(Oxytocin)을 만들어낸다. 이 호르몬이 뇌하수체 후엽을 통해 혈관으로 유입되어 자궁에 다다르면 자궁은 수축되고 곧 엄마의 산통이 시작된다.
출산일이 되면 자궁 근육 조직은 이미 옥시토신 수용체를 발현시켜 다가올 옥시토신에 반응할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옥시토신(Oxytocin)이란 이름은 그리스어인Oxus (swift) 와 Tokos (childbirth)의 합성어로 이름 자체에 “신속한 출산 (Swift Childbirth)”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임신기간에 비하면 출산 과정은 말 그대로 신속하게 이뤄진다. 옥시토신이 엄마의 자궁을 수축시키면 태아는 머리로 자궁경부를 더 강하게 밀게 되고 이 자극은 또 다시 엄마의 뇌로 돌아와 더 많은 옥시토신을 분비 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옥시토신은 점점 더 강도높게 자궁을 수축시켜 출산을 유도한다. 병원에서 출산이 늦어질 경우 합성 옥시토신을 주입하여 분만을 유도한다. 퍼거슨 반사 (Fergusson reflex)라고도 불리는 이과정은 어떤 반응의 결과가 되돌아와서 그 반응을 더 증폭시키는 양성 피드백(Positive Feedback) 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평소 연필심 크기에 불과했던 엄마의 자궁입구가 아기의 머리와 어깨가 빠져 나올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늘어나는 사실에서 엄마가 겪게 되는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출산이 이뤄진 직후 옥시토신은 이제는 역할을 다한 태반(Placenta)을 자궁 밖으로 내보내는 일과 과다한 출혈을 억제하는 기능도 한다. 출산은 해산의 고통이 해산의 기쁨으로 극적으로 교차되는 감정 변화를 수반한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요16:21).” 출산을 마친 엄마의 얼굴에서 산통으로 일그러졌던 표정은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번진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 엄마의 가슴에 안겨 젖을 무는 순간 엄마의 뇌에서는 또 다시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이번엔 자궁이 아닌 엄마의 유선을 자극하여 아기에게 젖을 내어주는 기능을 한다(Milk Let-down). 더 나아가 옥시토신은 엄마의 심리적 안정과 모성애와 그리고 아기를 향한 애착형성에 기여를 한다. 1970년대 새끼를 전혀 돌보지 않은 처녀 쥐에게 옥시토신을 투여했더니 엄마처럼 새끼를 돌보게 되었다는 연구에서 시작해서 남녀 간의 사랑이나 동료 사이에서의 우정, 타인을 공감하는 일에 있어서도 옥시토신이 관여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그래서 옥시토신을 이른바 사랑의 호르몬(Love hormone)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옥시토신이 출산이나 모유수유를 같은 생리학적 기능을 넘어 모성애, 애착, 사랑, 동료애, 우정과 같은 정서를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호르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많은 판결을 했지만 유일하게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누가 살아있는 아기의 친어머니인가?”에 관한 판결이다. 이것은 솔로몬의 지혜로움을 탁월하게 드러내는 일화이기도 하지만 모성애의 진면모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하다. 두 명의 여인이 한 집에서 삼일 간격으로 각각 아들을 출산했다. 하지만 한 여인이 자던 중에 자신의 갓난아기를 압사시키고 말았다. 그러자 그 여인은 밤에 몰래 죽은 자신의 아기를 다른 여인의 살아있는 아기와 바꿔 놓았다. 솔로몬에게 억울함을 호소한 여인의 이야기는 이랬다. “미명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아기가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내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왕상 3:21).” 그러자 두여인은 살아 있는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며 솔로몬왕을 찾아 오게 된 것이다. 두 여인의 상충되는 주장 외에는 목격자나 증거가 없었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했던 두 여인 앞에서 솔로몬은 느닷없이 칼을 가지고와 그 아들을 두 쪽으로 갈라 반 씩 나눠 주라는 청천벽력같은 명령을 내린다. 가짜 어미는 그것이 공평하다는 듯이 동의한 반면 진짜 어미는 성경에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이 불붙는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아이의 진짜 어미는 아들을 다른 여인에게 주고 아무쪼록 죽이지 말라고 간청했다. 이것으로 누가 아기의 진짜 어미인지 판결하는 일은 끝이 났다.
모성애는 아이의 죽음 앞에서 순간적으로 조작되거나 위조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모성애를 직접 소환해내는 것이 이 판결의 지혜였다. 성경은 이 두 여인이 모두 창녀였다고 말한다. 이 아기들이 친 남편으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그들을 거쳐간 남성들에게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창녀의 모성애라고 다른 것은 아니였다. “마음이 불붙는것 같아서”라는 표현에서 마음을 히브리어로 “Raham”으로 번역했는데 이는 “긍휼”을 의미한다. 희브리어에서 “긍휼”을 뜻하는 “Raham”이나 “Rahamim” 과 같은 단어는 모두 “자궁”을 뜻하는 “Rechem”에서 파생된 말이다. 모성애는 자녀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자 어머니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만 하나님의 성품엔 모성적 사랑이 짙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모으시고(마23:37),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품으신다 (시131:2). 하나님은 뜨개질하듯이 우리 몸과 영혼을 지으셨고(시 139:13), 여인이 그 젖먹는 자식을 혹시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옥시토신은 모성애와 애착형성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모성애가 옥시토신은 아니다. 모성애의 원천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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