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고도 세자릿수 폭염이 고집을 부려대더니 처서가 지나서일까요. 억지로 머물던 온탕에서 나온 듯 기분 좋은 서늘함이 뺨을 스쳐 갑니다. 달라스 기후에 입추, 처서를 생각하다니… 억지춘향이란 핀잔을 들을지라도 몸에 밴 구식 정서, 정체성인 거라고 스스로 다독입니다.
돌배나무꽃과 홍가시나무가 아름다운 봄철인 2020년 3월 23일~ 5월 7일, 달라스의 코비드 샷다운 이후 일터인 살롱의 분위기가 많이 변했습니다. 손님의 남편들, 아내, 자녀, 친지들, 교우들도 세상을 떴습니다. 잃은 것이 많습니다. 이어지는 코비드 변이종 때문에 주춤거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마스크를 고집하며 다른 이와 한 방에 있기를 꺼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손님들이 코비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다 보니 가끔은 서너 분이 한방에 있기도 합니다.
오늘은 잔잔하게 흐르는 옛날 찬송가! 엄마가 좋아하던 찬송가라서 함께 듣고 싶다고 C가 사 온 페르난도 오르테가 (Fernando Ortega)의 CD인 찬미의 제사(Hymns of Meditation)를 올렸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를 직접 피아노를 치며 부릅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 ,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등을 허밍으로 따라하다가 낮으막한 합창 소리로 ‘작은 둥지’를 채웁니다. 네일 케어하는 동안 할머니, 어머니 때부터 함께 부르던 찬송을 들으며 어릴 적 따듯한 추억을 나눕니다. 우리 시대의 정서가 담긴 찬송입니다. “주 음성 외에는,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예수 나를 위하여, 나의 죄를 씻기는,” 등 어쩌다가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부른날은 행복했다고 합니다.
요즘 교회에서는 이런 찬송 안 해요. 벌써 오래됐어요. 예쁜 드레스에 모자 쓰고, 엄마와 할머니들은 장갑 끼고 모자 쓰고 성경 가방 들고 우리 손을 잡고 교회 갔어요. 세상이 바뀌니 교회도 많이 바뀌었어요. 찬송가가 유행가도 아닌데 왜 모든 교회가 안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미리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B가 자기 폰으로 ‘시리에게 물어서’ 찾은 내용을 들려줍니다. “페르난도 오르테가는 수정같이 맑은 피아노 연주와 청량감 있는 보컬로 폭넓은 사랑을 받는 뉴멕시코 출신,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연주했다, 스페니쉬 음악, 포크, 찬송가 등을 잘 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만들어 왔으며 현재 CCM 계의 대표적 싱어송 라이터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민자 가정 출신인 줄 알았는데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태어나고 자란 뿌리 있는 미국인이네요. 하기사 우리 모두 미국인이지만, 이곡은 스페니시로 부르는 찬송이예요!
갑자기 숙연해진 아이린이 크리넥스로 눈가를 닦습니다. 버핑하던 손길을 멈추고 가만히 손을 감싸 주었습니다. 멕시코 땅이었을 때부터 살다가 텍사스 미국인이 된 아이린, 초등학교 보조교사로 일하며 딸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BSF에서 열심히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코비드 후에는 온라인으로 하니 접속이 어려워서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방학엔 딸과 손녀와 멕시코국경 지역의 선교팀에 합류해서 돕는데 스페니시를 잊어버려서 늘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미안해요, 곡이 무척 은혜스러워 눈물이 나네요, 스페니시로 부르는데 멕시칸인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다니… 가사가 궁금해요.
내 폰에 번역 앱을 다운 받은 게 있어서 CD 재킷에 끼워진 부클릿의 스페니시 가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보여줍니다.
-“Con Que’ Pagaremos? -우리가 무엇으로 주의 은혜에 보답하리오?”를 다시 한국어로 바꾸어서 보여주었더니 한글을 처음 본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소통하며 은혜로운 구식 찬양, 라틴 아메리카 멜로디에 마음을 담아 기도하듯 듣습니다.
“… 눈을 들어 별을 보리라. 나는 그 뒤에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나를 지켜보고… 금이나 은으로 당신에게 갚을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해 치른 큰 희생, 겸손한 제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 페르난도 오르테가의 우리는 무엇으로 지불할 것인가. 구글 번역.
코비드로 닫혔던 서부 국경지대의 선교지가 열리는 대로 대학생이 된 손녀와 딸과 다시 출발하겠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국제적 자존심 때문에 모든 게 안전한데 걱정스러워 함께 가지도 못하고 보내주지도 않으려고 질색하는 남편. 믿음으로 보내주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멕시칸의 정체성인 스페니시로 전도하기 위해 몇 마디라도 써서 외워야겠다고 아이처럼 웃자 B와 C가 응원합니다. 천국 시민권자들의 ‘작은 둥지’에 웃음 향이 박하처럼 번집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브리서 1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