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광이요 기쁨이라는 고백은 우리 모두의 것
데살로니가전서 2:20을 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야말로 바울 자신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합니다. 저는 “영광이요 기쁨”이라는 말을 들으면,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배우들이 거의 상투적으로 하는 시상 소감이 떠올라서 영광이라는 말은 부정적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2장을 읽어보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사실 바울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었습니다. 생각을 해보면, 이제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인데 이런 분들을 남겨두고 떠나려고 하니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어려움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고서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과 염려 때문에 이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멈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오늘날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말씀처럼 성도들은 목회자들의 영광이요 기쁨이 될 수가 있어야 하고 목회자들 역시 성도님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자신들의 가장 큰 영광과 기쁨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할 때 큰 기쁨이고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요즘 우리 교회 가족들의 그런 모습 볼 때 기쁘고 영광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것저것 다 잘 되어서 걱정거리 하나도 없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을 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을 볼 때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제가 감히, 저를 감히 바울에다 비교할 수 없겠지만,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이러한 신앙이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했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빌립보서 3:5-6을 보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자기 지파, 학문, 가문, 배경을 자랑하고 이런 것을 자신의 소망과 영광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이런 모든 것을 오물로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주님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전한 복음의 열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야말로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해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고백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소위 무슨 대단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건축 헌금을 해서 엄청난 교회로 성장했다든지, 교회사역을 위해 엄청나게 헌신을 했다든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또는 해외선교를 위해 선교사들을 파송을 했다든지 이런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고, 어려움 가운데에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이겨 나갔기 때문입니다. 현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갖은 핍박과 훼방으로 인한 고난 중에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버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신앙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요 기쁨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돈을 많이 벌고, 그렇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다고 해도 건강하고 믿음을 지키고 신앙생활을 잘 한다면 기쁨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인으로 성숙한 삶을 감당하고 영적으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밖에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얼마 전 저희 교회 집사님께서 예배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현관입구에서 목을 빼고 누군가를 기다리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알고 보니까 예배에 참석하기로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현관입구에서 예배실까지 찾아오지 못할까 봐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비단 바울이나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향해서만 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다른 분들을 향해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 복음을 전한 분들을 위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런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영광이요 기쁨”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Okay, 그러고 싶은데 사람이 있어야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광이요 기쁨이 될 수 있는 영혼들을 붙여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필요한 영혼을 보내 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