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를 마친 뒤, 카톡 전화벨이 울렸다. 한국에 살고 있는 친한 집사님이었다. “계엄령이 선포됐습니다.” 그 한마디는 마치 커다란 바위처럼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마음으로 통화를 마치자마자 뉴스를 켰다.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화면 속에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소식과 함께 정당 활동은 금지되고, 언론은 통제되며,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포고령이 거듭 방영되고 있었다.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박 대통령이 시해된 뒤 계엄령이 발령되었던 그때의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 되살아났다. “2024년, 21세기에 웬 계엄령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화면 속의 현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공수부대가 국회로 진입하려는 모습과 이를 막으려는 시민들의 외침이 유튜브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내 심장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쿵쾅거렸다.
“아무도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기도를 속으로 되뇌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불안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계엄령이 지속된다면 국회는 해산되고, 언론은 봉쇄될 것이고 자유로운 목소리는 억눌릴 것이다. 미래를 상상할수록 무력감이 커졌다.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계엄령이 선포된 과정과 그 위헌성을 지적한 기사가 여러개 올라와 있었다. 국회가 과반수로 거부하면 계엄령이 철회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나마 희망의 빛이 조금이나마 비치는 것 같았다.
다행히 190명의 국회의원들은 계엄령 취소를 의결했고,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모든 상황은 약 6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그날 오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잃어버릴 뻔한 자유와 예상되는 경제적 혼란, 군사적 위기, 그리고 국가적 불안정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삶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으로 실감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생각했던 나의 무관심이 부끄러웠다. 다행히도 이번 사태가 큰 희생 없이 마무리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만 계속 반복했다. 아직도 하나님이 한국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삶과 정치를 별개의 문제처럼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여러겹겹 보호되고 있는 견제와 균형 시스템 때문이다. 하지만 왕정 시대에는 달랐다. 한 나라의 운명이 왕이라는 개인에게 의해 좌우되었다. 왕의 판단은 곧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열쇠였다. 구약성경에는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 이르기까지 왕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는 단순히 고대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사람과 국가라는 것이 어떤 관련이 있는 지 보여준다. 그 때문에 오래된 왕들의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왕들의 이야기 중 가장 극적인 것 중 하나는 남쪽 유다의 유일한 여왕, 아달랴의 이야기다. 그녀는 여호사밧의 며느리였다. 선한 왕의 가문에 속했지만 출신은 특이했다. 아달랴는 북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왕 아합과 바알 숭배자로 알려진 악의 대명사 이세벨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남북화합의 조건으로 여호사밧은 자신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이세벨을 결혼시킨 것이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어 전쟁을 했다. 여호사밧은 긴 냉전을 끝내기 위해 아합과 동맹을 맺고,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이었다. 미가야 선지자는 여호사밧에게 이 동맹이 파국을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지만, 여호사밧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아달랴는 남유다를 바알 숭배로 물들였고, 남편이었던 여호람 왕은 그녀의 영향을 받아 악의 화신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호람은 내장 질환으로 고통 속에 죽음을 맞았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는 북이스라엘의 예후에 의해 즉위 1년 만에 죽임을 당했다. 왕위 계승자가 사라지자 아달랴는 야심은 불타올랐다. 손자들을 모두 죽이고 직접 왕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다윗 왕조의 단절이라는 큰 위기를 초래했다. 하나님은 다윗 때에 후손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 이 위기를 벗어난다.
아하시야의 누이였던 여호세바가 어린 조카 요아스를 침실에 숨겨 그의 생명을 구해 낸 것이다. 요아스는 성전에서 6년 동안 보호를 받았다. 7년 째가 되었을 때, 제사장 여호야다는 그를 왕위에 복귀 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여호야다의 치밀한 계획과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한다. 아달랴는 제거되고, 요아스는 왕위에 복귀했다. 끊어질 뻔한 다윗 왕조가 다시 복귀되는 기가막힌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예언했다. “네 왕위는 영원할 것이다.” (사무엘하 7:12-16) 요아스의 생존과 복귀는 이 약속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실재하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증명했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 이어진 왕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완성되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말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실 것을 믿고, 고통 속에서도 그분의 손길을 기대하며 인내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가 사함받는다는 약속을 믿으며,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약속을 붙들고 살아간다. 손해를 봐도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을 믿으며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 말씀 때문에 좁은 길을 걷는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잠시지만 끊겼던 다윗왕권을 요시야를 통해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고국을 떠나 있으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조국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조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이민자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지금 한국은 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실 것을 믿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만을 구하고 찾고 의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