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B.A/M.A)
고려신학대학원 졸(M.Div)
Missionar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Th.M)
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D.Min)
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나이가 들수록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어떤 일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점점 자신감이 사라지고, 한계를 인정하게 됩니다. 한때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 부족함이 하나님 앞에서는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신앙의 새로운 문이 조금이나마 더 열렸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 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줍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연약함을 알기에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며 낮아지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 속 다윗은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늘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는 시편 131편에서 “내가 교만한 마음도 없고 높은 눈도 없으며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아니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스스로를 낮춘 다윗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되어가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어린아이 같은(Childlike) 마음에 나서고 들레지 않았더니, 좋은 열매가 맺혔습니다. 주장하고 따지고 외치고 싶었는데, 어린아이 같은 존재임을 알고 스스로 기도의 자리에서 참고 인내했더니, 하나님이 더 좋게 하셨습니다. 어린아이 같이 하고자 했더니, 나 한 사람의 변화보다, 주의 교회 일을 함에 있어서 훨씬 더 복된 열매를 보게 했습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상실한 모습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 형편없는 존재로 전락시킬 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큰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차갑고 삭막합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평가하고 비교하며 은혜를 누리기보다는 경쟁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웃고 기뻐하는 교회는 은혜로 충만합니다. 한 사람의 모습이 교회 전체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변화를 이루는 장소입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기뻐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될 때, 교회는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한 공동체가 됩니다. 어린아이다움은 착함과 성실함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들도 본성이 죄인이어서 더 이상 착하지 못합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은, 단순함입니다. 복잡하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함이 중요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예배로 삶의 중심을 채우는 것입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힘든 일이 있을 때, 교회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며 낮아져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어려움을 만나면 엄마 품으로 달려가듯이, 어머니의 품과 같은 교회로 달려가는 단순함이 중요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자주 무거운 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어린아이가 되어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의 기쁨입니다.
미국에 있다 보면 한국에서 가끔 전화가 옵니다. 여러 가지 이유의 신앙상담일 경우가 많습니다. 태평양 건너
있으니,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도 조금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교회 내에서의 갈등의 문제들, 행 정적인 일들,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 상담을 합니다.
어느 날 은퇴권사님 전화가 왔습니다. 속이 상해 가지고 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내용인즉, 은퇴 권사회에서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자기가 사회를 보셨다는 겁니다. 당신이 사회를 보시는데, 사회를 본 다음에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 목사님 설교가 용서에 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일흔번에 일곱번이라도 용서해 야 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때 잠깐 자기가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용서하려면 얼마나 힘이들까 하고 아주 잠깐 생각을 했는데 목사님이 그 단 위에서 한마디 하시더라는 겁니다. “권사님, 졸지 마세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와하고 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와 수모를 당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이 칠십이 넘어가지고 이런 수모를 당하고 이렇게 해도 되느냐고 저에게 전화를 하신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상담을 했겠습니까? 한참을 있다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권사님, 목사님이 졸았다면 졸으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 분이 더 속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졸았다면 졸은 것이라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가 와서 다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제가 졸았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면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제게 집중하라고 영적으로 일깨우시는 음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서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그 순간에는 좀 더 목사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맞기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딴 생각하지 말라고 나를 깨우시려고 목사님을 통해서 그 말을 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분이 올해 소천하신 저의 모친이십니다. 연세가 들어도 할 수 없는 그런 거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자식인 데, 어머니가 마흔일곱에 혼자되셔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제가 잘 압니다. 만사에 제가 당연히 어머니 편을 듭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 교회와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식이 아니고 목사로서 어머니의 영혼을 케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을 방문하면 늘 어머니가 인천공항까지 따라오셔서 어머니가 우세요. 그럼 제가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못 보더라도 여기 한국이 있고 저기 미국이 있듯이, 우리는 언젠가는 천국을 갑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태평양 건너가듯이 우리가 요단강 건너서 저 천국 가니까, 천국은 미국보다 훨씬 더 좋고 그럼 영원히 같이 살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위로하며 기도합니다. 그 기도대로 어머니는 몇 달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에 먼저 가 계십니다.
어머니에게 배운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이었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는 복선(複線)을 깔고 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더 나아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복잡한 모습으로 인상짓게 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투명한 사람,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신앙과 삶을 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카톡 대문의 좌우명 같은 언어도, “Simple Life, High Spirituality”입니다. 복잡한 세상입니다. 주님 앞에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으로 영육간에 강건하고, 섬기는 공동체에도 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