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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0월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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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영 목사] 통합예배 ABC 세대를 잇기 위한 최적의 통로

안지영 목사(나눔교회 원로목사)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개척 초기에 어른들은 아이들의 언어 한계 때문에 한국어로 진행되는 예배에 둘 수 없으니, 영어부를 따로 두자고 하더군요. 하지만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는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달라스에 그렇지 않아도 교회가 많다고 그러는데, 무엇하러 또 하나의 교회를 세워야 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목회를 그만 두는 게 낫다는 입장이었지요. 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교회 식구들에게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언어를 배운다”라고 주장하며, 청소년부 담당자를 한국에서 온 지 1년 밖에 안되는 전도사를 영입했습니다. 그 전도사가 가진 아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감지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개척 초기부터 함께 한 세월이 16년이었습니다.

2004년 9월 첫 주일 예배를 드리던 그 때가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개척 멤버 중 한 가정집 거실에 배열해 놓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는 십대 아이들의 표정은 정말 말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에는 불만으로 가득했습니다. 설교를 하려고 앞에 섰는데, 벽에 기대고 앉은 채 잠들어 있는 아이, 코를 고는 아이, 의자에 누워 버린 아이, 딴 데 쳐다보고 있는 아이 등등, 대부분이 그 자리에 와 있는 걸 싫어하는 눈치였지요. 아이들이 이러니 부모들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예배를 경건하게 드려야 하는 게 마땅한데, 아이들의 불경스런 태도에 어른들의 신경은 온통 아이들에게 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니 그날 예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나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내가 괜찮으니, 아이들에게 신경을 끄고 예배에 집중하자고 격려했습니다. 현재 아이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두둔해 주면서 말이지요. 설교하는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내 설교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대신에 나는 아이들 하나하나 개인적으로 불러내어 주중에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 아이들은 담임목사가 자기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사는 얘기를 하는 게 좀 이채롭게 느꼈나 봅니다. 이런 나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보이더군요. 또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농구와 축구에 나도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이제 50줄에 들어가는 내가 십대 아이들과 함께 뛰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뛰다 보니, 이런 나를 기특(?)하게 본 것 같았습니다.
금요일 밤, 청소년부 모임에서 나는 담당 전도사에게 성경 가르치는 것 보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노래방, DDR, 여러 보드게임 등을 마련해서 우리집에서 즐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아직 아이들은 영적인 관심이 없으니, 일단은 아이들이 노는 걸 잘 관찰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잘 노는 것도 영성이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이런 가운데, 나도 아이들이 노래할 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아이들이 자기들과 함께 노래도 하고, DDR에서 스텝을 밟느라 뒤뚱거리는 나에게 친밀함을 느꼈나 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나에게 대한 의리를 지켜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 설교를 들어주는 거였지요. 이렇게 해서 얻은 영광은 어른 중에서 자기들을 제일 잘 이해해 주는 어른에 내가 뽑혔다는 겁니다.
이렇게 아이들과 어울리는 동안에 나는 영어 한 마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한국어로 대응했고, 아이들은 내 말을 거의 이해했고, 되도록이면 한국어로 대답을 하려고 애를 쓰더군요. 그러다가 표현이 안 되면, 영어를 사용하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청소년부 전도사도 영어를 모르니 한국어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가 영어로 말하려고 하면, 아이들이 나중에는 그냥 한국어로 하라고 했다네요. 그리고 자기들이 영어보다는 한국어를 더 사용하기 시작했다는군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이중언어 구사능력이 확 늘어버렸습니다.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는 아이들이 청소년부 담당자 영어가 시원치 않다고 불평을 하면, 어느새 해임되는 걸 목격했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교회 아이들은 영어 못하는 전도사와 소통하기 위하여 한국어로 말하는 게 어색하지만 그걸 넘어서기 시작하는 걸 보았습니다. 결국 사랑의 힘이었어요.
한국어만 쓰는 전도사와 나를 아이들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불편한 한국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통합예배를 고수하는 과정에서 어떤 분들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EM을 열어서 우리 아이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영어로 하지 않아서 영적 성장을 못 하는 게 아니라고 설득했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영적 목마름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적 성장을 강요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아이들이 알아서 찾기 시작할 거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고등하교 2, 3학년이 되면 아이들이 성경공부에 대해, 영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필요를 느끼는 아이들을 개인적으로 혹은 소그룹으로 해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청년부로 연결이 되어 성경공부가 이어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역시 믿고 기다려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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