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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2월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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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영 목사] 통합예배 ABC

관점의 변화를 요구하는 예배

안지영 목사(나눔교회 원로목사)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전에 LA지역의 한 교회에서 타문화권 이해를 돕기 위한 강의를 매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단기 혹은 중장기로 해외 선교에 관심있는 평신도를 대상으로 타문화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지를 나의 선교 경험을 바탕으로 나누었지요. 이 강의를 할 때마다 나는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해외 선교를 위해 타문화를 이해하려는 열정을 가진 여러분은, 헌재 자녀 세대의 문화를 얼마나 이해해 보려고 하였는가요?” 해외 선교를 위한 타문화권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열매를 맺으려면, 평소 집에서 자녀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거지요.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존재하는 영어부와 한어부 사이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타문화권 선교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 헛바람이 든 선교가 아니겠냐고 뼈아픈 도전을 하곤 했습니다.

통합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대 간의 간극을 좁혀 보려는 수고가 없이는 통합예배가 제대로 정착하기가 어렵습니다. 같은 가족 안에서도 서로 다른 문화적 충돌을 경험합니다. 한국보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는 그 격차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는 없는 언어 장벽도 벅찬데, ‘이민자’라는 주변부 사회 계층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려는 압박감 또한 무시할 수 없지요. 그런데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통로가 바로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이 주류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걸 부모의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자녀들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마련해 주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 왔는데, 자신들의 뜻대로 자녀들이 움직여 주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미묘한 불편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요. 또한 미국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과 여전히 한국 문화에 익숙한 부모 사이에 생겨버린 문화적 간극도 메꿀 수 있는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렇게 자녀들을 더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한 교육열은 한국 부모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는 바람에 자녀들의 사교육을 위한 학원이 꽤 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교회의 청소년반 활동이 주말에 있는데, 학원에 가야 해서 청소년 활동에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꽤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부모의 교육열은 어디를 가도 식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걱정하면서 막상 교회 활동이 학원 수업에게 밀린다면, 자녀의 신앙을 걱정하는 부모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겠지요. 부모의 이런 압박이 자녀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세대 간의 대화도 원활할 수가 없게 되고요.

하지만 초기 개척 멤버들은 자녀들의 신앙을 우선시하여 되도록이면 자녀들이 달라스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20년 전의 달라스와 지금의 달라스는 그 위상이 많이 다릅니다. 20년 전에는 달라스는 미국의 변방이었습니다. 모두들 미국의 주류 사회로 진출하기 위해서 동부와 서부, 그리고 북부의 유명 도시의 대학으로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좋은 직업을 찾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도시로 진출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하고 더 좋은 직업의 기회를 얻기를 바라는 게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자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자녀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은 달라스 지역이 아니라 타주로 가는 걸 선호했습니다. 그 이유는 되도록이면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소위 유명한 대학이 아니더라도, 타주로 가기를 원하는 자녀들이 많습니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기들의 삶을 살겠다는 열망이 터 크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우리 교회의 경우, 졸업 후에는 멀리 가겠다는 얘기를 했던 아이들이 대부분이 달라스 지역의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함께 있는 게 이제는 더 이상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들도 그걸 더 선호했습니다. 특히 부모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진정한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더 좋은 대학이나 직업이 더 이상 크게 다가오지 않게 된 거지요. 진정한 행복은 거기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부모들이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공부 압박을 과도하게 주지 않게 되었지요. 그래서 부모와 자식들에게, 더 좋은 대학이나 더 나은 직업을 찾기 위해서라든가,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되었습니다.

미국은 지방자치가 매우 발달되어 있어서, 지방 대학 출신들은 그 지역 기업들이 소화를 하는 게 당연한 현상입니다. 또한 지방 도시의 생활비가 대도시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대도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적어도 대학 생활을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할 경우, 대학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세속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고 신앙을 지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나서 대학원을 갈 경우에 필요하면 타주로 가더라도 그 나이 정도가 되면, 신앙관이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교회 식구들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돌아와도 그를 반기는 사람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지요. 고향에 와서 직업을 찾는 게 불편하지 않게 되는 거지요. 간섭하는 부모가 아니라, 조언해 주는 부모가 있고, 함께 자라며 신앙 생활했던 친구들이 있는 편안한 교회 공동체가 있는 고향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지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와 어른들이 있는 공동체를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통합예배는 바로 이런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예배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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