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나눔교회를 두고 주변에서는 좀 독특한 교회라고 하는데, 어쩌면 나눔교회가 실행하고 있는 ‘온 세대 통합예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EM(English Ministry)이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한인 이민 교회 환경에서 1세대와 2세대를 통합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참 생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예배가 지금까지 거의 20년간 지속되어 왔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대를 통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반 교회에서는 생각 못한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런 과감한 – 어떻게 보면 무모한 – 시도 때문에 우리 교회가 일반 교회와는 다르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리 특별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특별나다는 것이 원래 성경에서 제시하는 공동체의 본질이기 때문이지요.
교회에 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초대교회”가 어떤 교회였는지를 고민해 봤을 겁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낯설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구호가 나타난다는 것은 현 시대의 교회가 처음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부담을 가진 많은 목회자들이 던지는 주제가 바로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인가? 어떤 목회여야 하는가?”입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교회론에 입각한 교회를 추구하며 나름대로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정말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장애물을 만나 고군분투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목회 과정에서 경험하는 자기 자신의 한계, 교회 구성원의 문제, 재정이나 장소와 관련된 변수들이 이러저리 얽혀서 목회 현장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그 목회 현장을 떠날 수 없어서 견디고 있기는 하지만 목회자로 사는 삶이 앞뒤가 꽉 막혀서 체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런 경험이 어찌 나에게만 있겠습니까만은 이런 압박을 견뎌낸다는 게 쉽지 않기에, 현실에 타협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 스스로 지쳐가게 됩니다.
특히, 작은 교회에 부임하거나 교회를 새로 개척하는 경우에, 목회자는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목회 사역 외에 일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사모도 남편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일반적이지요. 이럴 경우, 목회자 부부가 목회와 생계를 감당하느라 과부하가 걸려 원활한 목회 사역이 어렵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심신이 지쳐서 목회자도 지치고, 교회 식구들도 교회 공동체 삶이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목회 초기에 가졌던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려던 활력과 희망이 점점 옅어져서 목회 현장에 있는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거나, 아니면 현실과 타협해버리게 됩니다.
주변에 교회 개척에 관한 자문을 구하는 젊은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의 전통적인 개척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개척을 하기 위해서 함께 동행할 개척 멤버가 필수인데도, 무작정 목회자 가정집에서 개척 예배를 드리고 목회를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혹시 함께 동행하는 성도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목회자와 함께 같은 비전과 가치관을 갖추기 위하여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교회를 세우는 바람에 초기 개척 멤버들이 떠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제가 지난 수 년간 미드웨스턴 신학교 한국부에서 “성경적 목회와 교회 모델”이라는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수업에서 제가 그동안 해왔던 목회와 교회의 모습을 나눌 때면, 진지한 관심을 보여주는 목회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분들이 나에게 하는 얘기 중에, “초대교회에 관한 원리를 배웠고, 또 그것에 대한 방안을 토의하고 연구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과연 이 시대에 그런 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 허탈할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나는 이런 숙제들을 나의 목회 현장 속에서 풀어나갈 것인 것 고민해 왔습니다.
나눔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는 아닙니다. 아직도 재정이 충분하지 않아, 무슨 사역을 하려고 해도 쉽게 한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의 여러 지체들을 도울 수 있는 헌신자들이 모자라서 진땀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역자들에게 생활비를 충분히 줄 수 있는 규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더군요. 의사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하네요. 그런데 그게 됩니까?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 목회가 행복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이 일을 할 것이냐 묻는다면, 그럴지도 아닐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길에 들어선 것은 주님께서 제게 요구하셨기때문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생명을 살리는 목회’라는 첫 부르심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다만 이 길을 갈 거면, 이왕이면 제대로 가보자는 마음으로 시도해 보는 거지요. 그러면서, 함께 해준 가족들 때문에 감사의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나를 신뢰해 주는 교회 식구들 때문에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여전히 저는 목회를 배우고 있고, 그 목회를 통해 교회가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