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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5월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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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문 목사]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안광문 목사
생명샘교회 담임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기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식입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합니다. 더운 날씨에 몇 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으면 무척 목이 마르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물을 마셔버리면 정결 의식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제사 드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목이 말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정결 의식을 위해 사용한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8장 12절을 보더라도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철저히 드렸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보다 더 하라는 말씀인가요? 이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금식을 세 번씩 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꿈도 꾸지 말라는 말씀인가요?

바리새파 사람들의 문제는 이 사람들은 율법의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면만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마 5:20)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의는 뭘까요? 여기서 말씀하는 의는 그렇게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내면적인 열정, 하나님과 깊은 관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 이를 바탕으로 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근본 정신을 망각한 외형적 의가 아니라 내면적인 것에서 우러나와서 겉으로 표현되어지는 진정한 의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계적으로 율법 조항을 지키고, 사람들만 의식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행동을 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속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데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율법의 근본 정신을 망각한 채로, 율법을 외적으로만 지키는 그 정도 수준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 당시에 가장 모범적이라고 인정받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그렇지만 막상 이 사람들은 율법의 근본 정신은 망각하고, 율법의 문자만, 즉 율법의 껍데기만을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의 근본 정신을 망각하고 껍데기만을 붙잡고 있는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 좋은 형제”라는 이야기는 제가 어릴 적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의 좋은 형제가 농사를 같이 짓고 가을에 추수를 했습니다. 추수한 쌀을 반반 나눠서 각자의 창고에 쌓아 놓았습니다. 형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반반 나누면 동생 네는 아이들도 많은데 쌀이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형은 그날 밤 몰래 동생의 창고에 쌀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런 줄 모르고, 동생도 생각해보니 형님 네는 아이들이 장성해서 쌀이 더 필요할 텐데, 그렇게 반반을 나누면 아무래도 형님 네가 부족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그날 밤 형님 네 창고에 쌀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다시 형은 동생 네 창고에 쌀을 가져다 놓았고, 동생도 형님 창고에 쌀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 서로 마주치고 만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 형제를 의좋은 형제라 부르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의”는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안중근 의사”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다 돌아가신 분을 “의사”라고 합니다. “의”는 영어로 “Justice”입니다. 그런데 그 형제를 의좋은 형제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의 좋은 형제”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계가 좋은 형제”가 맞습니다.

“의”는 “Justice”뿐만 아니라 “Righteousness”라는 뜻과 함께 “Relation”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마 5:20) 이 말씀에서 “의”는 “Righteousness”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관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더 나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시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성경의 문자에만 얽매여서 우리 자신들의 노력으로 Justice를 이루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외식적으로 형식적으로 흘러버리게 될 것이고, 곤고함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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