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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5월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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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 목사] 진정한 이웃이 됩시다!

신용호 목사 (라이프교회 담임목사)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에 실린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코씨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작가가 되기 전에 구멍 가게를 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게가 날로 번창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에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가게로 인해 옆집 구멍가게들이 장사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가게가 잘 되는 것이 옆 가게를 망하게 하는 것인 줄 몰랐어요. 가게를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일 것 같아요.” 그녀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 가게를 축소하고 손님들을 옆가게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남게 되었고, 그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 글이 바로 ‘빙점’이라는 소설인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이었습니다. 바로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그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구약과 신약이 말씀을 집약하고 또 집약하면, 큰 계명인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대한 말씀과 큰 사명인 ‘지상 명령’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지상 명령에 대한 말씀은 대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 행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에 대한 사랑에는 소극적인 모습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웃에 대한 사랑’은 직접적인 자신의 희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물질만능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물질과 자신의 편안한 삶에 대한 ‘자기 희생’은 과거에 비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변화와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의 백성과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이웃 사랑에 대한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누가복음 10:25-37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정한 이웃인 ‘유대인, 유대교에 속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있는 위선적인 서기관의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진정한 이웃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로 진정한 이웃은 사랑의 희생을 기쁨으로 여기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보기에는 죽은 사람처럼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지만, 그냥 피하여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사마리아인은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는 그에게 다가가 자신이 가진 기름과 포도주로 치료해 주었습니다. 물론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나 자를 지나쳐 간 것은 그들이 성전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만약 죽은 자를 만져서 부정해 지면 7일 동안 성전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강도 만난 자는 예루살렘에서 나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볼 때, 그가 유대인일 확률은 높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가 유대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자라는 이유 때문에 자신의 소유를 사용하여 치료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은 한 생명(영혼)을 살리는 것을 기뻐하실까?’ 아니면 ‘제사를 먼저 드리는 것을 기뻐하실까?’입니다. 그런데 호세아 6:6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영혼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합당한 것을 먼저 택하여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진정한 이웃은 끝까지 책임을 지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도 만난 자를 지나쳐 갔던 제사장과 레위인도 어쩌면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마음 속으로 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야고보서 2:15-17에 빗대어 보면, 그 모습은 ‘거짓된 사랑, 죽은 사랑, 죽은 믿음’입니다. 반면에 사마리아인은 자신이 가진 소유를 기꺼이 희생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일정 때문에 떠나가 있는 동안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강도 만난 자를 돌보아 주라고 합니다. 만약에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와 주겠다고 합니다. 바로 그가 회복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돌보려고 하는 진정한 이웃의 모습인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자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성품에 합당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종교적인 행함보다 하나님의 사랑 위에 세워진 믿음의 행함이 먼저다.”

로마서 9:15,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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