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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월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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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사모] “분단국의 시 사랑”

서정숙 사모
시인
달라스문학회회원

엊그제 눈시울 젖듯 내린 그 작은 비 덕일까. 토마스 공원의 개망초들이 손 시린 것 같은 흰색에 노란 점을 찍었습니다. 봄이면 풀과 함께 깎여 키 클 새 없는 개망초. 아기 손톱 크기의 앙증맞은 꽃들! 맑은 밤의 별처럼 촘촘히 꽃자리를 깔았습니다. 가뭄을 버티더니 꽃말 대로 꽃피워, ‘화해’하며 순응하며 겨울 채비하라고 합니다. ”개망초가 피었다 공중에 뜬/ 꽃별, 무슨 섬광이/ 이토록 작고 맑고 슬픈가…”(위키백과,문태준)

2011년부터 서울시 지하철 공모전에 선정된 스크린도어의 시들. 언니가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찍어서 보내주시곤 했습니다. ‘따듯한 위로와 희망의 언어인 시’로 공감하는, 황혼이 아름다운 울 언니. 7년 만에 다녀온 한국은 “시인의 나라”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친척, 친지 방문이었는데 일부러 찾아간 듯 여러 지역에서 시와 시화전을 만났습니다.

신안군의 재원도 작은 섬에서 20여년 목회하다가 암으로 은퇴, 완치되어 임자도에 계시며 남편책의 표지 그림을 그려주신 친구(YouTuve, CTS 7000미라클 땅끝으로-재원교회)를 포천의 친구목사님부부의 운전으로 뵈러 갔습니다. 멀리서 갔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김준곤, 이만신목사님등을 키운 믿음의 어머니, 문준경전도사님이 죽창과 총칼로 순교당한 증도백사장과 그 분과 함께 공산당원에 순교 당한 48분의 순교기념교회, 순교기념관에서 활천문학회원들의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상설 순교시화전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본향 군위에서는 “옹기장수의 아들”,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된 “김수환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방문. 코스모스 피기 시작한 초가집 생가와 옹기가마, 추모기념관을 보았습니다. 한 주간 함께한 속 깊은 사촌 시동생이 폰으로 찾아낸 경북 의성맛집 ”논산 칼국수”. 옷 젖기 좋을 만큼 내리는 초가을비를 피해 나지막한 추녀 밑으로 길게 선 줄. 우산 쓴 남자들, 꼬부라진 할머니, 멋쟁이 중년 두엇도 줄을 섰습니다. 다행히 점심시간 끝이라 오래지 않아 들어가니 겨우 열 개 남짓 탁자. 그런데 먼저 눈에 띈 벽 장식. 시화를 담은 우윳빛 둥근 접시들, 옹색한 나무 벽에 선풍기와 함께 걸린 향토 시인들의 시, “국수를 삶으며, 고등어를 구우며” 등이 시맛을 돋웁니다. 구수한 누른빛 손칼국수와 푸짐한 비빔밥, 우리 탁자엔 비광, 탁자 번호대신 화투가 붙은 서민들 옛 정서의 멋집!

“어서와! 군위문인협회 시화전” 친근한 초대! 도롯가에 나지막하게 걸린 대형현수막. 작은 간이역으로 지역 관광지가 된 화본역 광장에서 시화전 전시로 바쁜 군위 문인협회 회장 이전호님과 임원진을 만났습니다. 남편 고향의 문인들을 이렇게 만나다니 … 이런 기적 같은 우연이 필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주시는 시집 세 권을 소중하게 가져왔습니다.

이북이 고향이지만 먼저 가신 아내의 고향에 조성된 달성군 송해공원의 산책로. 이정표처럼 서 있는 시화와 “출발하게 만드는 힘이 동기라면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습관이다-짐 라이언”의 명구가 눈길을 끕니다.
물안개가 신비로운 “섬진강을 바라보며 백운산을 뒤에 두고 청매실농원 홍쌍리 명인”의 『매화는 내 딸 매실은 내 아들』 “아름다운 농사꾼 홍쌍리의 시로 쓴 인생 이야기”와 “아름다운 농사꾼 홍쌍리 자전 시집” 두 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산길 한옆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쪽파를 다듬고 계시던 어르신께 길을 물어 올라왔는데 나중에 뵈니 그분이 팔십연세 홍쌍리 여사님이었습니다.

육이오 때 시아버지 전사하신 횡성, 휴전 막바지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치열했던 곳입니다. “군민과 함께하는 전시회- 청일문학 문인협회 시화전” 대형현수막과 화환들. 횡성군청 1, 2층 갤러리 드넓은 홀의 양쪽 벽에 알맞은 거리와 높이로 장식된 시화 액자의 품격! 달라스의 문우들이 생각났습니다. 횡성참전기념공원의 네덜란드군 참전기념비 및 횡성군참전기념탑에는 기억의 벽, 참전약사, 횡성전투 내용을 검은 판에 흰글씨로 새겨놓았습니다. 수많은 육해공경 참전자들의 명단. 20대 초반에 홀로되어 전사한 남편의 전사지도 못 보고 오십 전에 가신 시어머니. 가슴 한켠에 비가 내립니다. ,바닥에 닿도록 휘어져 언덕길 아래 도로를 내려다보는 아름들이 소나무가 행여 무너져 내릴세라 힘겹게 버틴 세월의 더께! 두 살 아들 혼자 벌어 키웠던 어머니의 속마음은 어떠셨을까?

북의 남침 초기에 낙동강을 끼고 남은 손바닥만 한 땅. 더 이상 밀릴 수 없던 칠곡의 다부동 격전지, 무명옷에 포탄과 식량 40~50kg을 지고 올랐고 내려올 때는 부상병을 지게로 나른 분들. 다부동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포화 속에서 하루 50여분, 2,800여분의 지게부대원이 전사했습니다. 전적기념관과 순국용사충혼비 뒤쪽 정면에 올해 7월, 비로서 건립된 비석. “다부동 전투에서 산화한 지게부대원에게 바칩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73년간 이름없는 영웅들! 이런 분들이 있었다니… 뜨거운 슬픔! 이제야 알게됨이 송구했습니다. 구국관을 멀리 보며 내려오는 길에 성조기와 태극기 사이에 핀 무궁화. 붉은보라 꽃송이가 은회색 하늘 배경으로 더욱 귀하고 곱습니다. 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역사란 무엇인가』”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휴전상태인 대한민국에 평화가 지속되기를! 우크라이나 지역과 이스라엘 지역에도 속히 화해와 평화가 오기를!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시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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