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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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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람 교수] 슬기로운 공대생 생활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자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미국의 공대생들은 시니어, 즉 4학년이 되면 대부분 시니어 디자인 (senior design) 수업을 통해 4년의 공대생 생활을 녹여낸 졸업 작품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으나 대게의 경우 학교 주변의 크고 작은 기업에서 학부생이 맡을 만한 작은 프로젝트 주제를 제공해준다. 기업에서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과제비도 제공하는데, 학생들의 인건비는 포함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일회성 프로젝트를 수행할 좋은 기회가 된다. 학생은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해보는 귀한 기회를 제공받기 때문에, 이론을 다루는 수업에는 관심 없던 학생들도 시니어 디자인 수업만은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니어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는 학생들이 실제 기업과 같이 일을 하다 보니 교실에서 다룰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좋은 점이 많지만 나쁜 상황도 생긴다. 필자가 지도교수로 도움을 주었던 한 학생 그룹은 프로젝트를 맡겼던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다. 또, 프로젝트를 맡긴 회사가 학생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거나 반대로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아 문제가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기업과 학생들이 서로 윈윈하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만 말이다.
어떤 전공을 하더라도, 어느 분야에서 일하더라도, 세상은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있기에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대생들은 배우는 주제와 방법론의 특성 탓에 예외적인 상황이나 돌발 변수에 덜 익숙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학생들에게 시니어 디자인 프로젝트를 제공하고 인턴 기회를 찾는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졸업 이후에는 다양한 일들을 계속 겪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요사이 필자를 세상 물정 모르는 공대생이 된 것 같이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 비트코인이다. 값이 올라서다. 값이 올라 배가 아프다거나 투자 기회를 놓쳐 아쉽다는 하소연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말, 당시 비트코인은 한 개에 19,000달러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 해 초에는 900달러 수준이었기 때문에 1년에 20배나 오른 것이었다. 신문 경제면뿐만 아니라 SNS, 과학 칼럼, 유튜브 등등 모든 곳에서 비트코인이 회자되던 시기였다. 일반 대중 대부분이 비트코인을 알게 된 첫 시기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필자는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호기롭게 비트코인을 주제로 삼았다.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긴 했으나, 투자의 측면도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진보적이며 새로운 화폐로서의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투기의 대상이었던 것이 확실했고 가격의 변동성이 너무 컸으며, 특히 조만간 모두가 사용하는 화폐가 되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였다. 탈중앙집중식이어서 그 누구도 책임지거나 통제하지 않고, 수많은 컴퓨터에서 소스 코드가 돌아가면서 비트코인의 소유와 거래를 상호 확인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구축한다니… 이러한 우려로 당시 칼럼에서 필자는 17세기 튤립 투기 파동을 소환해 가며 비트코인의 투기 위험성을 칼럼에서 경고한 적이 있다.
7년 전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비트코인이 곧 사라지거나 가치가 없어질 것처럼 보였다. 7년이 지난 2024년, 필자는 사라지기는커녕 3배나 가격이 오른 비트코인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수업 시간에 배우지 않은 문제를 받아든 공대생으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어떤 현인이 답하길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했다. 이유가 있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특별한 이유없이 태어난 뒤,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훗날 비트코인에 대해서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시작된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비트코인은 개발되었고, 대다수 사람이 그 존재를 받아들였으며, 디지털 환경에서 오랜 기간 생존하였으니 이제 그 사용처를 함께 고민해보자고 말이다.
7년 전 비슷한 시기에 필자는 전기차에 대한 칼럼도 썼는데, 당시 테슬라는 다소 위태로운 기업이었다. 비록 전기차를 대량 생산하여 팔기 시작했고 일론 머스크의 인기도 대단했으나, 전기차 산업 전체의 향방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충전소의 부족, 높은 전기차 가격, 짧은 1회 충전 주행거리 등이 걸림돌이었다. 전기차에 장착된 자동 주행 기능도 전기차의 인기에 보탬을 주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기대에 못 미치는 자동 주행 성능이 전기차를 구매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전기차 시장의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었다. 여러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전기차 열풍이 불었고, 마치 10년 안에 모든 내연기관 자동차가 없어지고 전기차만 살아남을 듯 보였다.
그랬던 분위기가 올해 또 돌변하여 테슬라는 매출이 감소하고 전기차 시장은 전체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테슬라와 같은 순수 전기차보다는 하이브리드 전기차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침체기는 또 언제 호황기로 바뀔지 모른다. 전기차 기술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수많은 공대 졸업생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결과다. 그들의 노력과 성과와는 별개로 시장은 출렁인다. 일련의 사태를 보며 식견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다시 학생이 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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