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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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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민 목사] 성경적 캠핑

배경과 더불어 읽는 성경(19)

최승민 목사 플라워마운드 교회 동역목사

팬데믹을 지나며 많은 분들이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미래의 삶을 위해 인내하고 견디며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기도 했지만, 코비드로 인한 팬데믹을 거치며 현재의 나를 희생해 가며 미래의 삶에 투자하더라도 미래의 내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근래의 트렌드는 일과 삶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종의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워라벨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캠핑(Camping)입니다. 바쁜 일상을 살다가 내 삶을 위한 휴식의 시간에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자연을 즐기며 보내는 것이지요. 우리가 캠핑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이처럼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한적한 자연 속에서 나를 돌아보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낭만입니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에는 유명한 호스텔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 호스텔’입니다. 좋은 시설 때문에 유명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땅을 경험하며 답사하고 싶은 젊은 백패커(backpacker)들을 위해 주요한 이스라엘 도시들에 오래전부터 운영되어 온 전통 있는(?) 호스텔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호스텔의 입구에는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바로 “ABRAHAM – THE FIRST BACKPACKER”라는 문구입니다. 이 문구를 처음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며 옅은 미소를 띱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맞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왔고, 가나안 땅에서도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장막, 즉 텐트를 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영락없는 백패커 캠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캠핑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대 시대에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을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이주하고자 하는 지역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그저 모든 것을 몸으로 부딪혀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본토와 친척을 떠난다는 것은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위험한 여정을 떠나는 것이었지요. 아브라함은 그 위험한 길을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은 야곱이 하란을 향하여 가던 중 한 곳에 이르러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누워 잤다(창 28:10-11)고 전합니다.
돌을 베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드는 모습이 꽤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비참한 상황입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중동 문화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막 기후에서 나그네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환대받아 초대되지 못한다면 그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작은 몸 하나 의지할 텐트조차 없는 나그네라면 누구보다 환대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당연한 환대를 받지 못합니다. 야곱이 돌을 베고 누웠던 벧엘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의 이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후보지들이 반경 1마일 내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벧엘 후보지로 추정되는 오늘날의 아랍 마을 베이틴(Beitin)에서는 기원전 3200년 경의 초기 청동기 시대 정착지도 발견됩니다. 중기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요새화된 도시의 흔적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즉, 야곱이 돌을 베고 누워 잠을 청했던 그 자리 주변으로 멀지 않은 곳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벧엘에서 노숙을 해야 했습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소문이 다 퍼져서 누구도 야곱을 자기 집안으로 들이기를 꺼려했는지, 아니면 야곱이 스스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야곱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돌을 베고 잠을 청하는 노숙을 합니다.
위험한 여정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발을 떼었던 아브라함의 상황과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어 피난을 가고 있는 중에 비박(bivouac)을 해야 했던 야곱의 상황은 절대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 둘의 인생 모두에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만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야곱에게도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창 28:14-1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의 삶의 방식이 올바라서가 아니라 그가 언약백성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자격과 능력, 헌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해 주어지는 은혜를 체험하는 삶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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