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까운 실비치(Seal Beach)를 찾았다. 실비치는 캘리포니아에서 은퇴자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선호하는 곳이다. 평소와 달리 바닷가를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늘과 마주하고 있는 수평선과 비췻빛 바닷물 위로 비상하는 갈매기 떼들, 하늘 공원을 한가롭게 산책하는 구름은 한 폭의 풍경화였다. 햇살이 물결 위에서 왈츠를 추는 모습은 별들의 축제를 방불케 했다. 바닷가 초입에서 내 시선이 머문 풍경이 있었다.
서퍼들이 서핑보드 위에서 몸을 숙이며 파도를 기다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서퍼들은 바람이 많은 날 바다를 더 찾는다. 파도가 크게 일수록 그 높이를 타고 오르며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서핑을 배우고 싶었지만 선뜻 행하지 못했다. 예측할 수 없는 파도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순발력을 발휘해 뛰어넘는 그 스릴감이 궁금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서퍼들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는 듯했다.
다른 날과 달리 서핑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중에서 몇몇 사람들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특별히 바다에서 몰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기다리는 사람을 보았다. 파도의 움직임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파도의 높이를 타고 자유자재로 즐기는 모습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높은 산을 방불케 하는 파도가 서퍼를 향해 달려올 때, 그 서퍼는 몸을 굽히고 파도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너끈히 뛰어넘었다. 세상의 파도를 향해 집요하게 맞서 저항이라도 하는 듯했다. 파도는 포효하며 달려오는 짐승 같았다. 다른 서퍼들은 파도가 부서질 때 포말 속에 잠겨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서핑하는 사람들은 많은 레저 중에 왜 서핑을 즐기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서핑만이 줄 수 있는 무엇이 있기에 그들을 바다와 파도 앞에 머물게 하는 것이리라.
한동안 그곳에서 서퍼들을 바라보다 서퍼들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힘을 빼는 서퍼와 힘을 주는 서퍼로 나뉘는 묘한 풍경을 마주했다. 힘을 빼고 유연하게 파도에 몸을 싣고 파도를 타는 서퍼는 아무리 거대한 파도가 몰려와도 너끈히 넘었다. 다음 파도를 여유 있게 기다리는 태도까지 취했다. 힘을 주는 서퍼는 파도가 왔을 때, 방향 감각을 잃고 파도 속에 묻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몸을 세우기 전에 다음 파도가 몰려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겨우 몸을 가누는 서퍼도 있었다. 파도와 몸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서퍼가 파도와 몸이 분리되어 파도를 두려워하는 상황이었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힘을 뺀 서퍼는 바다에서 몰려오는 파도를 자유자재로 대처하고 마음껏 즐기는 반면, 힘을 주고 긴장한 서퍼는 파도에 매몰되어 방향을 상실한 채 비틀거리며 파도를 피해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삶에서 힘 빼기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내 힘으로 무엇을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파도에 몸을 실어 맡기고 유연하고 자유롭게 파도를 넘어 서핑하는 서퍼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삶의 다양한 파도를 뛰어넘어야 하지 않을까.
서퍼들은 자신을 엄습해 오는 어떠한 파도라도 맞설 의향이 있는 듯했다. 그 사람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파도와 맞서 싸우며 자신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파도를 피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거나 나약한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픈 내면의 강한 열망이 역행해서 표현되는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서핑을 통해 자신들이 처한 어떠한 상황과 환경을 돌파하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유사했다.
삶의 바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파도를 어떻게 대면해야 할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가항력적 상황 가운데 마주하는 파도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때로는 파도의 방향과 높이를 간과하고 역류하다 파도 속에 침몰한 적도, 거대한 파도의 힘에 압도되어 방향을 상실한 채 바다에 표류한 적도, 저항할 수 없는 파도와 맞서 싸우려다 힘을 잃고 망망대해를 항해한 적도 있을 테다. 파도의 방향과 힘에 압도되지 않고 파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거대한 파도를 기다리던 그 사나이처럼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파도를 서핑할 수 있길 소망한다.
변화무쌍하게 다가오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 서핑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파도에 휩싸여 암초를 만나면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침몰하게 될 테다. 파도 이후에 마주할 잔잔한 바다를 소망하며 노를 저어야 하리라. 파도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공동체가 함께 마주해야 할 파도가 있고 홀로 마주해야 할 파도가 있다. 물살을 거슬러 호흡 조절하고 급물살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갑자기 포효하며 엄습해 오는 파도를 뛰어넘고 항해할 수 있으리라. 삶의 망망대해에서 파도를 너끈히 뛰어넘어 자유롭게 서핑할 수 있는 서퍼가 되리라. 어떠한 파도가 엄습해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성령의 파도를 타고 너끈히 승리하는 서퍼가 되길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