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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7월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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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희 교수] “짧은 영상을 대하는 긴 고민”

전창희 교수 UT알링턴 영상학과 교수

한국과 한국 사람에 대한 독특한 문화를 외국 분들과 말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빨리빨리”의 문화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물어오곤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모든 걸 빨리하려고 하냐고요. 그러면 저는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들과 한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것을 빨리 해 내야 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길게 설명해 주곤 했습니다.
그런 한국인의 피가 제게도 남아 있어서인지 외국 동료들과 함께 식사라도 하면 가장 먼저 식사를 끝내는 사람이 저였던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장황하게 대화하며 천천히 식사하기보다는 그저 10분 안에 빨리 먹고 또다른 일을 하려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았습니다.
뉴욕에서 텍사스로 이주한 뒤에도 너무나 천천히 일을 처리하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렇게 한국인들의 독특한 성향처럼 여겨졌던 “빨리빨리”가 이제는 미디어 영상 속에서 주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많은 영상을 시청하시는 분이라면 “짤” 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흔히 짧은 영상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젊은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 등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는 것이 아니라 주요 장면 만을 짧게 편집해 놓은 영상들로 주로 시청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 같은 미디어 사이트에도 “짤방” 을 만들어 놓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짧은 영상들로만 구성된 채널을 지칭하는데, 이렇게 만들면 조회수나 구독자 수가 더 빨리 늘어 간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렇게 짧은 영상만을 주로 다루는 틱톡(TikTok)이라는 플랫폼이 여러 국가의 사용 금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급속하게 확산하여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짧은 영상”이 대세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짤”이라는 말보다 조금 더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쇼츠 (Shorts)”라는 영어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구글(Google)은 틱톡(TikTok)과 경쟁하기 위해 최대 1분 길이의 영상만을 올릴 수 있는 유튜브 쇼츠(YouTube Shorts)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쇼츠”에 관심을 가지고 이 짧은 영상들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학자들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분석들이 존재합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빨리빨리”의 성향이 미디어를 소비하는 많은 현대인의 마음속에 점점 더 심화하여 가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보다 짧은 시간 안에 “빨리” 재미와 쾌락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 “쇼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쇼츠”가 다루는 주요 컨텐츠들도 사실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동물을 학대하는 잔인한 영상, 음식을 과도하게 낭비하는 영상,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상, 게임에서 퍼온 짧은 영상 등,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포함됩니다. 짧은 시간안에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들입니다.
이런 “쇼츠” 영상의 인기는 기존 다른 장편 영상들의 제작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나 TV드라마 등의 주류 미디어에서도 이제는 보다 빠른 시간 안에 자극적인 장면과 내용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쇼츠” 가 주는 짧은 시간안의 자극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외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영상속에 나오는 각 장면의 편집도 빠르게 변해가고, 각 장면은 시각적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다 많은 그래픽 효과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현실의 반영이라고 여겨졌던 영화의 힘은 사라지고 비현실의 시각화가 많은 드라마의 주요 특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주된 이유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든 현실에서의 도피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영상 속에서 더 빨리 더 큰 자극과 쾌락을 찾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보며 생각하고 사유하는 시간은 필요 없어지고, 더 큰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 되어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상을 제작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짧은 영상”들을 대하면서 “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짧은 영상”을 통해 더 큰 자극과 재미를 관객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더 효과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짧은 영상에 넋을 빼고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을까?
제게는 긴 고민이고 기도의 시간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짧은 한마디의 말씀 속에 복음의 진리를 전해주셨던 수많은 예수님의 말씀들을 묵상합니다. 이런 짧은 영상들이 많아질 수 있다면 “쇼츠”는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으리라 기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내려오니 벌써 일어난 막내아들이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즐거워하는 아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그리고 반갑게 아침 인사를 전하며 슬쩍 그 옆으로 지나갑니다. 제 눈에 아이가 보고 있는 “쇼츠” 영상이 스쳐 지나갑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블럭스 (Roblox) 게임의 화면에 담긴 영상 제작자의 의미 없는 농담이 귀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침에 일어나 먼저 잡은 핸드폰의 짧은 영상 속에 어떻게 복음을 담아낼 수 있을까? 주님의 말씀이 그저 자극적이며 쾌락을 추구하는 많은 “짧은 영상”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할 수 있을까?
세상의 가치관을 거슬러 올라가는 하나님의 가치관을 “빨리빨리” 만나 “짧은 영상” 속에 복음을 담아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그 중의 한 사람이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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