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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4월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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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렬 목사] 부족함의 은혜

기영렬 목사 -달라스 드림교회 담임

부족하다는 것은 불편한 것입니다. 모자란다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잃어버렸다는 것은 가진 것이 없어졌기에 속이 상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이런 불편함 모자람 상실이 존재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부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을 보고 열등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돈이 많은 사람을 보고 가지지 못한 것에 열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돈이 많고 똑똑한 사람이 외모에 대해 불만족해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은 남들이 부러워 할만 한 외모, 물질, 지혜를 가지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열등감 속에서 시달립니다. 매일 하루하루를 탄식 속에서 신음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면 그런 부족함을 가진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한 경우가 많습니다. 베토벤은 그의 말년에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 지금도 명곡으로 꼽히는 교향곡 합창, 피아노 소나타 하머클라비어, 장엄미사 디아벨리 변주곡 등은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았을 때 작곡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런 곡들이 당대에는 너무 난해하다, 연주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다고 할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뛰어난 작품이라고 합니다.
1,000가지 이상을 발명한 에디슨도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축음기를 발명했는데, 귀가 잘 들릴 수 있는 보청기를 발명하지 않았느냐고 하니 발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발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장애가 오히려 위대한 발명의 촉매제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예가 있습니다. 사울은 마지막은 불운했지만, 사사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전환될 때 하나님께 첫 번째로 선택 받은 왕이었습니다.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가장 약한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속한 불량배가 레위인의 아내를 윤간하고 죽게 하는 바람에 이스라엘 11지파와 베냐민 지파 간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결과적으로 베냐민 지파는 크게 패배하고 600명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합니다. 그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지파라는 출신 성분은 역적 집안의 후손 비슷한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을 베냐민 지파였던 사울로 선택합니다.
이것은 많은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당시에 가장 강력한 지파는 유다 지파, 에브라임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도 훌륭한 인물이 많았을 텐데 왜 하필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냐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만약 유다와 에브라임 두 지파 중에서 왕을 뽑았다면 두 지파간의 완력이 더 강해졌을 가능성이 있어 아예 힘이 없었던 베냐민 지파에서 왕을 세우셨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었던 출신지파가 결국 왕이 되는 긍정적 조건이 된 것입니다.
특히 그가 사무엘을 만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게 되는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아버지 기스가 소중하게 여기는 암나귀를 잃어버려 그것을 찾게 되는 과정에서 사무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나귀를 잃어버린 것이 기회가 되어 사무엘을 만나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상실이 축복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런 예는 다윗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랑받지 못하는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보고 왕의 제목을 선택해 기름 부으려 할 때 아버지 이새는 다윗을 아들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갔을 때 형들은 그에게 격노하면서 야단을 칩니다. 막내아들이라면 많은 사랑을 받아도 부족한데 말입니다. 이 상황을 고려하면 다윗의 어머니는 형들의 어머니와 다른 어머니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시편 27:10에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는 고백을 보아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에서 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역대상 7장에 보면 다윗의 누이가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두 여인의 아버지가 이새가 아니라 나하스라고 소개됩니다. 아마도 나하스는 두 딸을 낳고 죽고 어미는 기업무를 자로 이새에게 가서 재혼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새는 다윗을 낳았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형제들마저도 그를 외면했습니다. 유다의 아들 오난이 다말에게 대했던 태도와 비슷하게 말입니다. 나중에 다윗의 누이였던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다윗 정권의 실제를 장악하는 것을 보면 이를 더 확증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이런 힘든 가정적 배경은 그로 하여금 더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외로울 때 사랑받지 못할 때,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할 때 그는 하나님으로 위로를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부족함 모자람 때문에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똑똑하지 못하고, 돈이 없고, 잘 생기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약한 것을 들어서 쓰시길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전도자가 되고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자신의 과거 이력 때문에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겸손하게 성도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잘한다고 뛰어나다고 자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맞아들이었던 압살롬은 키도 크고 너무나 멋진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머리카락이 도망하다가 나무에 걸려 죽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무리 힘든 일이 많아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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