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만큼 기쁜 소식이 있을까? 그런데 성령님께서 내 안에 내주하신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성령님의 통제와 지배를 받으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충만함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술 취함과 비교하고 있다.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술 기운에 의해 지배당하고 통제받는 것처럼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님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통제받는 것이다.
바울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성령으로 우리 안이 채워지기를 바라며 수동적으로 앉아서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 안에 부어졌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면 우리 안에는 이미 성령님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성령님으로 채워질 필요가 없다.“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는 말씀처럼 모든 신자는 다 한 성령을 이미 마신 자이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라는 말씀대로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사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을 우리가 내 안을 성령님으로 다시 채우라는 말씀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성령님께 전적으로 항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물놀이 안전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은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는 한, 그를 구하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를 도우려는 사람을 붙잡고 놓지 않기 때문에 둘 다 함께 익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옳은 방법은 물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다 포기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기할 때에 그를 구출해 내는 것이다.
똑같은 원리가 우리의 성령님과의 관계에서도 사실이다. 우리가 포기할 때까지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성령님께 항복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항복을 수반한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완전히 인정하고 포기할 때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그를 돕고자 하는 성령님께 항복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무능함을 고백하면 고백할수록 우리는 우리를 위한 성령님의 뜻에 전적으로 항복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해진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성령님께 항복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뢰해야 한다. 성령 충만한 삶은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온전히 인정하고 항복하고 그래서 성령님을 의뢰할 때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애를 쓴다. 심지어 실패해도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고 우리는 약속하고 헌신을 재다짐한다.
이처럼 성령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성령님과는 따로 내 힘으로 사는 일에 익숙한 우리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삶이 관계이기 때문에 항복은 중요한 것이다. 매 순간마다 성령님께 의존하는 관계이다.
항복은 이같은 관계가 이루어지고 지속되기 위한 기초이다.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뢰하고 항복하는 것이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는 최선의 길이다.
셋째로, 성령 충만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원하며 갈망해야 한다. 성령 충만을 바라지도 않고, 단지 성령님을 도움이 필요할 때만 부른다면 성령님으로 충만해질 수 없다. 우리 안에 거하시며 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머리로는 알고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생활과 삶 속에서 그분을 의식하지도 않고, 그분을 갈망하지도 않고, 그분과 동행하지도 않고, 그분의 인도에 순종하며 따르지 않는다면 성령 충만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는 예외 없이 성령님으로 거듭난 자요,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만들기 위해 일하시기 때문에 그때그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 가르치심, 깨닫게 하심, 죄를 지적하시고 회개케 하심, 우리의 내적 증거와 양심을 통해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우리가 순종하며 따를 때 더욱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며 성령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내주하심도 복음이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더 기쁜 복음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