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과 더불어 읽는 성경(28)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라고 가르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가르침을 주신 이유는 넓은 문은 크고 그 문으로 이어지는 길도 넓어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결국은 멸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좁은 문은 길도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지만 결국은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말씀하십니다(마 7:13-1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넓은 문과 좁은 문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넓은 문과 좁은 문이 멸망과 생명을 가르지는 않을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은유(metaphor)를 통해서 가르치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좁은 문을 고난으로 이해합니다. 좁은 길은 가기 힘든 길이고 넓은 길에 비해 분명히 어려운 길이기에 고난과 단순하게 연결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과연 고난의 길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이 고난의 길임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살게 하는 것이라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우리가 힘든 것은 그 길이 고통스러운 고난의 길이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짓고 싶어 하는 죄의 본성이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자신이 고난을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생명으로 인도함 받기 위해 고행과 금욕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좁은 문을 구원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한 길은 좁다는 것이지요. 물론 성경은 예수님 외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배타적 가르침이 과연 구원에 이르는 길과 문이 좁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길은 한 길뿐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그 길이 좁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지요. 이는 구원의 문이 결코 소수의 사람만을 위해 허락된 좁은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믿음 생활을 하되 열심히, 최선을 다해, 많은 헌신을 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 개인의 자격, 조건, 소유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누구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넓은 문과 좁은 문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은 넓은 문과 좁은 문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렸을까요? 당시는 로마식 도시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로마식 도시에는 어느 도시든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큰 길이 있었습니다. 그 길을 ‘카르도(Cardo Maximus)’라고 불렀습니다. 마음, 심장을 의미하는 헬라어 카르디아(καρδίᾱ)에서 기원한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도시의 중심을 관통하는 도로였기 때문입니다. 이 길의 양 끝에는 넓은 문이 있었습니다. 적군을 상대로 큰 업적을 세운 권세 있는 장군이 이 문을 통하여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물건을 팔아 큰 부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문을 왕래했습니다. 세상의 권력을 잡은 자들은 한 도시에 방문하기 전에 이미 자신의 이름을 딴 넓은 문을 건설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넓은 문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Jerusalem), 요르단의 제라쉬(Jerash), 튀르키예의 안탈리아(Antalya) 등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Hadrian’s Gate)과 같은 문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의 권세, 부, 권력만을 쫓는 삶은 결국 멸망하게 된다는 가르침이었던 것이지요.
반면에 좁은 문은 단지 물리적으로 문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붙여진 표현이 아닙니다. 초기 유대교 배경에서 ‘좁은 문’이 고유명사처럼 사용된 용례가 발견됩니다. 바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가는 문을 ‘좁은 문’이라고 불렀던 것이지요. 법정에 재판을 받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기에 스스로 떳떳하며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는 삶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쓰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때, 그러한 삶의 자세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우리를 진정한 자유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좁은 길을 걷는 삶 가운데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