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 F
Dallas
월요일, 9월 16, 2024

믿음은 과정이다.

김귀보 목사 큰나무교회 담임 내러티브 설교 연구소 소장 말씀 목회 공동체 Staff 울산 동신 장로교회 부목사 새문안 교회 대학부 담당 저서: <너의 길을 멈추지 마라> CLC 공저: <슬로우 바이블> 두란노 현 Southwestern Seminary 목회학 박사 과정 중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대원(M-div) 경상대학교 경영학(BA)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면 굉장히 뛰어난 것처럼 생각된다. 하나님이 특별히 아브라함에게만 엄청난 축복을 부어주신 것 같다. “큰 민족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엄청난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이것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축복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주셨다. “내 이름을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하겠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하고 그보다 더 큰일도 할 것이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모든 채워주겠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한 것은 아브라함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믿음의 여정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든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믿음은 하루아침에 자라거나,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분한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그 대가로 주신 상이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런 복된 삶이 있는데 한번 살아보겠냐고 초청하신 것이다. 그럼 왜 아브라함일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초청을 했는데, 그 초청을 받아들인 사람이 아브라함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초청은 현실적으로 납득이 안된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야, 큰 민족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된다.” 자기의 성공의 배경이 되어줄 아버지 집에 있어야 큰 민족 이루기가 쉽다. 메소포타미아의 발달된 문명에 있어야 이름이 알릴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놓고, 기반도 없고, 도움을 줄 사람도 없는 변방인 가나안 땅으로 가야 그것이 이루어진다니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런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12:4)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다고 한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초청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네 단계의 믿음을 보게 된다.
첫 번째 떠나는 믿음이다. 이것은 나의 세계, 나의 가치관을 떠나서 하나님의 세계, 가치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 생각, 내 가치관을 떠나서 하나님의 생각, 말씀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고 난 뒤에 기근이 찾아왔다.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것을 견뎌낼 힘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떠나는 믿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근을 피해서 이집트로 내려갔다.
두 번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버티는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다시 가나안 땅에 돌아왔을 때 다시 문제가 생겼다. 이번에는 가진 재산 때문에 조카인 롯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 싸움 이후에 롯은 좋은 땅을 찾아서 떠나버렸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힘들어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가나안 땅에 남아 있었다. 이것이 버티는 믿음이다.
세 번째는 체험하는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신앙의 버티기를 시작하니까 서서히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 네 나라의 동맹군에게 잡혀간 조카 롯을 구하는 정도까지 힘이 강해졌다.
마지막은 누리는 믿음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아가며서 점점 하나님을 누리기 시작했다. 100세에 주신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는데도 주저함 없이 하나님께 드렸다. 아브라함은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부터 이삭을 드릴 때가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간다.
누리는 사람은 아무도 당할 수 없다. 고통이 오면 고통을 누리고, 고난이 오면 고난을 누리고, 어려움이 찾아와도 그것을 누린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나서 누린 것이 아니다. 노예시장에서 누리고, 보디발의 집에서도 누리고, 감옥 속에서 누렸다.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서도 누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모든 상황에 개입하시고 컨트롤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버티기를 해 보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라. 하나님의 약속하신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믿고 버티기 기도를 하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버티기는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만나게 된다.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