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1 F
Dallas
수요일, 7월 3, 2024

[이기욱 목사] 말씀,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을까요?

이기욱 목사 알링턴 사랑에 빚진 교회

하루는 “자매님~ 오늘 눈 화장이 너무 잘 어울리시세요. 보기 좋습니다.” 라고 했더니 “목사님~ 지금 제 눈이 작다고 놀리시는거지요?” 하고는 시험에 들어서 오랜 세월을 찬바람을 일으킵니다. “형제님~ 요즘 얼굴이 좋아 보여요. 건강해 보여서 좋습니다” 라고 했더니 “목사님~ 지금 저 살쩠다고 말하시는 거지요?” 하며 매우 기분 나빠합니다.
베풀고 섬기는데 인색한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교회의 경제적인 사정을 이야기할 일이 생겼는데, “왜 저런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하는 걸까? 뭔가 도와 달라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면서 외면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색한 사람들에게 반대로 좋은 선물과 멋진 것을 대접했는데 “뭔가 도와 달라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상대를 발견합니다.
남에게 뭔가를 줘 본 일이 없는 사람에게 “생일인데 밥 한번 같이 먹자”고 초대를 했더니 정말 빈 손으로 나와 밥만 얻어먹고 갑니다. 말이라도 “생일 축하합니다” 라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말입니다. 나누는 것에 익숙한 사람에게 여행 경비를 드리면 진심으로 기뻐하고 고마워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호의에 익숙하지 않고, 호의를 잘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 여행 경비를 드리면 여행에서 돌아와 드렸던 여행 경비를 도로 내 놓으면서 “저는 받지도 주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부담스러운 행동은 다음부터 안 하셨으면 합니다” 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 목회를 하다보니 사람들이 눈에 보입니다. 이젠 경험에 의해 얼굴과 행동 하나에도 상대방이 대충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아 차릴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 모두가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만 신앙의 깊이나, 믿음의 정도가 사람들 마다 다르다 보니, 같은 복음이나 같은 은혜를 전한다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복음과 동일한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분명 같은 메시지인데 어누 누구에게는 큰 은혜와 감동이 되는 말씀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시험과 외면이 되는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훈련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면 그 사랑에 감사하고 감동하면 되는 겁니다. “왜 사랑하실까? 또 다른 의도는 없는 것일까?”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어’ 하면 “아멘” 하고 받아 드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뭔가 생략된 부분이 있을 거야? 아니면 하인들이 마리아의 필요를 알았기에 미리 포도주를 준비했을 거야” 하고 의구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어” 하면 “할렐루야” 하면 되는데, “당시 비가 부족해서 강물이 줄어 들어서 그랬을 거야” 하며 굳이 복음을 밀어낼 필요는 없는 겁니다. 나사로가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반응하면 평생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과 이성을 본인 신앙에 집어넣다 보니 자꾸 신앙에 ‘혼란’ 이 생기고 믿음은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도 자신에게 찔리는 것은 부담이 되니 그저 한 귀로 흘려 보내면, 그렇게 믿음의 변화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성장은 절대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훈련이 곧 신앙입니다. 그렇게 할 때 변화는 일어나게 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 하면 변화되지 않으면 영적인 생명은 결국 죽는 겁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염소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33절을 보면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마지막 날에 인자가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그렇게 구분해서 두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마지막 날이 되면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고, 거기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리고 양은 오른편에, 그리고 염소는 왼편에 두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양이 서 있는 오른편은 선한 쪽을 의미하고 염소가 서 있는 왼편은 나쁜 쪽을 의미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쪽이고 염소는 목자를 들이 박는 쪽입니다. 양은 목자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따라가는 쪽이고 염소는 도망가는 쪽입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언제까지 가롯유다처럼 양들 틈에 끼어서 자신이 양인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비추어 자신이 양인지 염소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시말해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이 믿음의 성장과 신앙의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는 겁니다.
신앙 생활에는 반드시 선한 쪽, 착한 쪽으로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녀임을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세월만 버리면서 죽음으로 달려가는 불쌍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멘”의 역사가 우리들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댓글 남기기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