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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 사랑에 빚진 교회
목사로서 살아가면서 한가지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가 “죽음에 대해서 별로 두려움이 없다” 였습니다. 나름 천국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죽음에 대한 나름의 성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장암 수술을 하고 아직 완치판정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몇 년을 더 검사를 받아야 할 상황에 있다보니, 어느 순간 죽음이라는 것이 가끔씩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사실 목회를 하면서 주변을 보게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평소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나이를 드신 분들 조차도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해 오히려 더 죽음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어느 날 문득, 설교를 준비하면서 “만약 내일 죽는다면, 과연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지난 날 살아왔던 날들 가운데 덧없이 후회스러운 일들, 또 돌이켜야 할 회개의 일들이 쭉 생각나는 겁니다. 그나마 후회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는 한데, ‘내일 죽는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후회하고 회개해도 이제는 그 과거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것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해 주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지금 육신이 움직일 수 있을 때 그리고 조금이라도 건강히 지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지금 목회하는 교회에 14-5년 신앙생활 하시던 성도님 내외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은퇴한 이후에 얼마 되지 않아 아내 되시던 분이 갑작스럽게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곧이어 남편 되시던 분이 급성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일년 남짓 투병생활 하시다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로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성도를 떠나보내는 ‘상실감’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교회를 떠나던 아니면 마음이 아파서 교회를 떠나던, 성도를 떠나보내야 하는 그 ‘상실감’은 목회자가 참 견디기 힘든 순간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 되시던 성도님을 병문안 했을 때, “목사님 작년 추수감사절에는 꼭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고 싶었는데, 성탄예배도 못드리고, 그런데 이번 부활절 때는 정말 꼭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겠습니다” 하시고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면서 “목사님~ 정말 죄송했습니다” 하시는 겁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교회를 다녔어야 하는데 …” 하시고는 얼마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꼭 한번만이라도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결국 돌아 가셨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아무 감흥 없이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어쪄면 그렇게 소원했지만 결국 그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한 사람의 소중한 바람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육신이 움직일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니까, 더 부지런히 예배에 나오고, 더 마음을 다해 교회를 섬기고, 더 나아가 이웃을 위해 선한 일, 착한 일들을 좀 더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결국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기에 앞으로 되도록이면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마음으로만, 그렇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또 하나 생각한 것이,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필요 없는 것, 또 어쩌다 필요할 것 같아 보관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 하나 버리는 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 유학와서 지금까지 보관해 오던 노트북들을 모두 정리해서 재활용 센터에 갔다 주었습니다. 옛날 윈도우 7, 8 하던 노트북들을 혹시나 하고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는데 돌아보니까 10-2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겁니다. 혹시 쓸까 해서 미련을 두고 있었는데, 다 처분하고 나니 공간도 넓어지고 얼마나 홀가분 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죽을 때 웃으며 아름답게 죽을 수 있도록 늘 기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보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태어나는 날 저는 울었고 저의 주변 사람들은 웃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문득 이 땅을 떠나는 날, 틀림없이 저는 웃으며 주님께 갈 것인데, 그 때 제 주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울리며 갈 수 있는 그런 감동의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살다가 혹시 저의 마지막 유서를 남겨야 할 날이 오면, 아마 제가 남길 유서는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