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일반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난 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장로회 신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교회와 선교 단체에서 리더로 섬긴 경험이 있어서 신학 대학원에 가서도 잘 적응하며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 입학해 보니 충격이었다. 2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전국에서 잘 나고 똑똑한 사람들만 뽑아서 모아 놓은 느낌이 들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나에게 신학은 완전히 생소한 학문이서 개념을 잡기가 힘들었다. 공부도 공부였지만, 잘 나고 뛰어난 사람들 속에서 내 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첫 학기를 지내는 동안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처럼 밝게 웃기도 하고, 열심히 뭔가를 하는 것처럼 살았다. 그런데 내 속에서는 혼자 부적응자가 되어 가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고민 끝에 첫 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학교에 남아 있을 자신이 없었다.
신대원을 입학하기 전에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배낭 하나 메고 자유롭게 선교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일년을 머물면서 영어도 배우고, 선교현장도 돌아보고, 현지에 있는 선교사님들과 교제도 나누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목회를 시작하기 전에 기회가 있으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참에 그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나의 휴학계획을 알고 친한 동기들이 다 말렸다. 그때만 해도 휴학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을 때였다. 같이 입학한 동기들이 3년 동안 같이 공부하면서 친밀해져서 졸업 후에도 목회의 동역자가 되는 분위기였다. 동기들은 신학교 때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도 서로 힘이 되어 준다.
만약 동기들과 깊은 관계 맺지 못하면 목회에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휴학을 하면 동기들과 깊은 관계가 형성되지 못해서 앞으로 목회하기가 힘들다고 휴학을 만류했다.
사실 나도 휴학이 두려웠다. 동기들이 사라지는 것도 두려웠다. 돌아오면 더 적응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동기들 보다 뒤쳐지는 것이 두려웠다. 홀로 낙오자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두려웠다.
그런데 이미 버틸 힘을 잃어버린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겼다. 손에 지도를 하나 들고 배낭을 메고 무작정 필리핀으로 날아갔다.
필리핀에서 1년 동안의 삶은 녹녹치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어려움들을 하나 하나 해결해가도록 힘을 주셨다. 묵을 곳을 해결하고, 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도 하고, 선교현장을 돌아보고, 수많은 선교사님들과 만나면서 교제를 나누었다.
그곳에서 일년의 시간은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복된 시간이었다. 모세처럼 도망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그곳에서 선교현장을 보고, 선교님들을 만난 것이 지금 목회의 중요한 밑그름이 되었다. 지금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선교 정책은 그때의 경험으로 세워진 것이다.
1년이 지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도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준비해 놓고 계셨다. 내가 떠난 뒤 학교에서 1년을 휴학하고 견습선교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었다.많은 동기들이 휴학을 해서 그 프로그램을 다녀왔다. 견습 선교 프로그램을 다녀온 그들을 자연스럽게 다시 동기로 만난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학년의 동기들도 참 좋았다. 결과적으로 두 기수가 모두 나의 동기가 되었다. 휴학하면서 동기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동기가 오히려 두 배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 힘이 다하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다. 쉬어 가도 괜찮다. 뒤쳐지는 것 같아도 괜찮다. 쉰다고 낙오하거나 뒤쳐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힘이 다할 때 하나님이 도우신다.
우리의 노력이 좌절되고, 우리 힘이 다 빠져도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 내 힘이 다할 때 하나님의 의지하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 그럼 하나님이 굳센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