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3:2)

‘장수’, ‘평강’, 정말 우리 인간들이 갈망하는 복의 목록들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연수가 120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해를 누리는 것’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약속한 복들 중에서 ‘장수의 복’에 관련된 것이 많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신22:7, 잠10:27).
그렇습니다. 인간은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하기에 오래도록 장수하는 복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는 약속도 있지만 주로 지상적 복보다는 영적인 복들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상적인 복을 나열하기보다는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엡1:3)을 준비했다고 했으며, 예수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고 권면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기도문들을 살펴보면, 지상의 복을 간구하는 것보다 거의 신앙적이고 영적 성장, 또한 사명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의 기도문을 보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4-19)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떤 특별한 이유와 의미도 없이 생명만 길게 연장하면서 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얼마나 살았느냐는 삶의 양(量)보다는 어떻게 살았느냐는 삶의 질(質)에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화가 피카소(Pablo Picasso)는 “인생의 의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고, 인생의 목적은 그 재능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했고, 철학자 니체(F. W. Nietzsche)는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가치 있는 목표, 즉 인간이 이루어야 하는 선한 목적에 쏟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으면서 오래오래 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록 33년의 짧은 인생을 사셨지만 가장 가치 있고, 목적이 분명하며, 자기 역할과 사명을 다 완수한 삶을 사시고 세상을 떠나셨던 것처럼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인생인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인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주여! 나로 아무런 목적도 없이 생명만 길게 하지 마옵소서. 생명을 지켜주시려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