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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1월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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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 원장] 한국 화가의 향기를 찾아서 – 박수근 편

미술 작품의 가치는 평생을 작품에 매진한 작가의 정신세계를 관객들이 인정하고 알아줄 때 평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화가 중 경매 낙찰가가 높은 작가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박수근 화가의 작품에는 어떤 향기가 숨겨져 있는 걸까요?

박수근 화가(1914-1965)는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군에서 비교적 부유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7세 이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급속도로 곤궁해집니다. 그림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12세에 프랑스의 밀레화가의 <만종>을 접한 후에는 “하느님, 저도 이 다음에 커서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주옵소서”라고 늘 기도하며 그림 그리기에 열중합니다.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은 포기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격려속에 혼자 독학으로 그림 공부에 정진합니다.
1932년 농가를 그린 <봄이 오다>로 서울의 [조선 미술 전람회 서양화부]에 입선을 하여 용기를 얻고 화가로서의 길에 들어섭니다.

계속 선전에 입선하며 1940년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복순과 금성에서 결혼을 합니다. 이후 해방과 6.25전쟁등의 소용돌이 속에 우여곡절끝에 남하에 성공합니다. 남하 후에는 미 8군 등에서 초상화 그리기로 생계를 유지하며 마련한 창신동 판자집에서 창작에 열중할 수 있게 됩니다.

1953년 제2회 [대한 민국 미술 대전] 에서 <집>이 남한에서 첫 출품되어 특선으로 선정되며 각광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박수근의 독특한 화법인 단순화 시킨 소박한 주제를 굵고 명확한 검의 선을 윤곽처리를 볼 수 있습니다. 흰색, 회갈색, 황갈색의 평면적 색채 또한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색채라 할 수 있습니다.

꾸준한 작품 활동 속에 1962년에는 국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며, 1963년에는 국전 추천작가로 <악>을 출품하나 나빠진 건강과 가난으로 인해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됩니다. 그 후 오른쪽 눈으로만 그림을 그리다가 1965년 51세로 아쉬운 나이로 비교적 짧은 생을 마칩니다. 지금 그의 묘화비에는 그가 즐겨 그린 아이업은 여인네의 소박한 모습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1963년,박수근,’유동’,유화,97×131Cm,제 14회(1965년) 국전 출품작

많은 예술가들이 살아 있을 때보다도 죽은 다음에 명성이 높아지고 작품이 재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화가중에는 이중섭과 박수근 그리고 수 년 전에 자살한 조각가 권진규의 경우를 들수 있습니다. 생존시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은 다음에도 평가받지 못하는 여타 작가들에 비하면 사후에 재평가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살아 있을 때 대접해 주지 못했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어쩔 수 없이 듭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다들 이렇다는 비운적인 운명론과 함께 이들이 진정한 예술가 상이라는 편견은 경계해야 대상입니다. 이러한 편견이 현재 수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의 앞날을 두렵게 만듭니다. 불확실하며 어두웠던 현실속에서도 자신만의 작품 세계에 몰두한 화가 박수근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만의 독창적인 향기를 그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유동>에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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