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백세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칠십까지 사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해서 ‘고희’ (古稀)라고 했는데 이제는 칠순 잔치도 남사스러워 한 끼 식사 모임으로 넘어가는 형편이다. 그만큼 장수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정말 백세를 살아내는 사람은 확률적으로 아주 희소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생명표’에 따르면, 2021년 출생아가 100세 이상까지 생존할 확률은 3.4% 정도이다. 1970년 생의 경우는 0.1%였는데 50년 사이에 34배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현재 65세인 시니어들 가운데 100세에 이를 확률은 2 퍼센트가 채 되지 못한다. 그만큼 백세를 사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문제는 100세까지 산다고 해도 얼마나 건강하고 보람있게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건강 수명’이라고 하는데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략 여성 75세, 남성 72 세로 되어 있다. 뜻밖에 짧다. 하지만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70대 중반 이후 부터는 몸에 각종 질환이 생기며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 노년의 중요한 일상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건강하면서 의미있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진정한 ‘백세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형석 교수는 ‘백세 시대’라는 낱말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라고 하겠다. 금년에 105세가 되셨다고 하는데 아직도 각종 강연과 세미나에 초청을 받아 전국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5월에는 새로운 책자를 발간했다. ‘김형석, 백 년의 지혜’라는 제목인데 부제로는 ‘105세 철학자가 전하는 세기의 인생론’이라고 되어 있고 ‘인생은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라는 질문을 표지 전면에 던지고 있다. 백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연구하며 일관되게 살아왔고 현재도 그렇게 의미있는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부럽고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필자도 이 분의 책과 강연을 자주 듣고 보는 편이다.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자를 읽는 가운데 인상 깊었던 구절은 ‘세월이 가며 나무가 자라듯 지혜가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구절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늙고 노쇠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성장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삶에 대한 지혜가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김형석 교수의 바람이다. 세월이 흘러 그저 나이만 많아진 ‘노인네’가 아니라 인생의 본질을 진솔하게 깨달아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지혜자’의 삶이 되고 싶다는 노철학자의 고백에 완전 동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분에게서 배운 것이 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겸손’이다. 방송국 인터뷰 가운데 들은 일화인데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이분은 식당에 갔다가 나올 때면 테이블을 섬겼던 봉사자들에게 허리를 굽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진행자가 ‘무엇이 그렇게 감사해서 그렇게까지 하시냐’고 묻자 ‘생각해보세요. 저는 그냥 의자에 앉아만 있는데 이런저런 음식들을 만들어서 제 앞에 떠억하니 가져다 주니 이게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러니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릴 수 밖에요’라는 답변이었다. 노철학자의 고고함이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밝은 미소의 얼굴과 함께 말이다!
창세기 23장을 보면 사라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매장지를 구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침내 헤브론 지역에 있는 ‘막벨라 굴’을 매장지로 소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아브라함의 겸손한 성품과 태도이다. 아브라함은 이민자였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십니다” (창23:6) 이들의 인사에서 보듯 아브라함은 그 지역의 대단한 유지였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의 지위를 배경삼아 권세를 부리려 하지 않았다. 그가 매장지를 찾는 동안 지역 주민들과 나눈 얘기를 보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입니다” (창23:4) 더우기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창23:7) 인사를 했다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재력과 무력을 다 갖추고 있었지만 이렇게 겸비한 모습으로 주민들에게 다가간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매장지를 소유로 얻게 될 때에도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시오” (창23:9)라고 청하였고 은 사백 세겔을 지불하고 매장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자신의 지위와 재력을 뒤로 하고 겸손하고 담백한 청원자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장면이다.
믿음 안에서 웰에이징이란 세월과 함께 겸비함과 어린 아이와 같은 순전함을 더해 가는 시간이라고 하겠다.
‘백세 시대’란 수명의 연장만이 아니라 성품의 숙성도 깊어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얘기들을 한다. 하지만 나이가 사람의 성숙함을 전하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세월과 함께 나무가 자라듯 지혜도 자라는 웰에이징의 여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