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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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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권 목사] 엠마오에서 게제르를 향하여

게제르 전경
엠마오로 가는 길 – 알토벨로 멜론 작품

살면서 한 번은 이스라엘에 다녀오고 싶었다. 시간과 기회가 닿지 않아서, 아니 사실은 게으름이 심하고 결단력이 부족해서 차일피일 미뤄오던 차였다. 이런 식으로 나이 먹다간 종아리에 힘이 빠져서 아예 거길 가보지 못할 듯싶어서 차제에 눈 딱 감고 용기를 냈다.

다행히 이스라엘에 27년째 살고 있는 지인이 있었다. 지금 홀리랜드 대학(The University of the Holy Land)의 부총장이신 정연호 박사이다. 송구한 마음을 감추고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하셔서 열흘 정도 그분과 함께 먹고 자며 이스라엘을 쏘다녔다. 정 박사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Hebrew University)에서 황금송아지 연구로 박사학위(Ph. D)를 받은 깊이 있는 학자이다. 사실 성지순례 가이드를 할 군번은 벌써 저만치 넘어선 분인데, 이번에 손수 카메라를 메고 나서 주셨다. 황송한 일이었다.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면서, 성경과 유대주의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토론하면서 탐사 비슷한 여행을 했다. 말씀 묵상을 통해 인연을 맺은 문영주 목사가 페북에 올린 글을 읽고서 ‘탐사’라는 표현을 써주셨는데, 이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진짜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땅을 쏘다녔기 때문이다.

달라스에 돌아오니 글을 써야 했다. 칼럼 청탁은 받았는데, 성경이나 세상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저 작금에 경험한 일이나 조금 정리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이참에 이스라엘을 다녀온 이야기를 몇 번에 나누어 써볼까 한다. 독자들이 글을 읽다가 지치면 그때 가서 슬그머니 주제를 바꾸면 되겠다. 어찌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싶다.

이제 첫 이야기를 풀어보자.

미국의 드류 신학교에서 역사철학을 가르치는 석좌교수인 레너드 스윗(Leonard Sweet)의 책을 번역할 기회가 있었다. ‘지저스 스픽스’(Jesus Speaks)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는데, 설교자가 읽으면 흥미를 느낄만한 내용이 비교적 많이 들어있다. 번역하면서, 예수님께서 엠마오를 향해 내려가던 두 제자를 만나신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더랬다. 두 제자가 남자 두 사람이 아니라, 부부였다는 해석도 그렇고, 그 외에도 무릎을 칠만한 영감을 책에서 받았다. 그 책 이야기를 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니, 이쯤에서 방향을 틀자. 책에서 읽은 엠마오 이야기가 너무 인상 깊었던 나머지 이스라엘에 가면 거길 꼭 가보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첫날 일정을 시작하면서 정 박사와 함께 엠마오로 향했다. 다행히 예루살렘 부근에 성경 속 엠마오로 지칭되는 곳이 있었다. 지금 그곳에는 가톨릭이 주관하는 기념 교회가 서있다고 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니, 옛날에도 예루살렘에서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겠다 싶다. 길 중간 어디선가 주님이 두 사람에게 끼여 들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엠마오로 같이 걸어가셨다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싼 비행기 삯을 주고 이 땅에 올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거기 도착해서 생겼다. 그날이 주일이었는데 문을 닫아걸고 통 열어주질 않는 것이다. 무슨 안식일이어서 문을 닫는 건 있을 수 있다 쳐도, 주일은 열린 날인데 열지 않는다는 게 도시 이해가 안 간다며 정 박사가 뭐라 했다. 하긴 아예 열지 않을 거면, 차라리 담벼락을 만들 일이지, 문을 거기 달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문은 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말이다.

돌아 나오면서 계속 툴툴댔다. 이솝이 말했던 것처럼, “저 포도는 분명히 맛이 실 거야” 운운하는 나에게 정 박사가 여길 포기하는 대신에 차라리 게제르에 가자고 이야기를 건네왔다. 갑자기 머리가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농사 월력’으로 유명한 게제르에 가자고? 거기라면 갑작스럽긴 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싶었다. 더구나 아얄론 골짜기 위치한 고대의 중요한 성읍이었으니, 아침에 경험한 ‘거부’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방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틀어서 남쪽으로 향했다. 쉐펠라에 놓인 아얄론 골짜기를 가로지르면서 게제르로 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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