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펠라를 지나는 40번 유료도로를 타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브엘쉐바에 이른다. 재미있는 건, 네비게이션 앱이 경찰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려준단 사실이다. 미국에서 그런 앱을 보지 못했기에 무지 흥미로웠다.
오늘 날은 기술이 발달해서 사람이 과속하면, 경찰이 지켜서서 경고하거나, 또는 네비게이션 앱이 말해줘서 속도를 조절하게 해준다. 아주 옛날에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살다가 과속하면, 무엇이 그들의 속도를 조절했던가. 하나님이 역사 안으로 개입하셔서 (divine intervention) 빨리 가지 못하도록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앱에서 떠드는 히브리말이 들린다. 물론 알아듣진 못하지만, 지금 그분이 내게 속도를 늦추라고 말씀하시는 건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과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스케줄에 맞춰서 가기를 원하신다. 그게 삶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다 싶다.
한참을 가는데, 정박사님이 차를 돌려 왼쪽 길로 들어서라고 한다. 표지판은 브엘쉐바로 가려면 직진하라고 하는데, 왜 여기서 꺾어야 하는지 처음엔 몰랐다. 알고보니, 교통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브엘쉐바 신도시였다. 거긴 텔브엘쉐바와는 좀 떨어졌다. 이따가 점심은 거기서 먹을 거란다.
결국 왼쪽 길로 들어서서 동글뱅이(이스라엘의 도시는 거의 대부분이 교차로에 이걸 만들어놓고, 먼저 오는 차가 돌아서 방향을 정해 갈 수 있게 해놓았다. 이게 뻘겋고, 퍼런 불이 켜지는 신호등보다 효과적이란다)를 몇 개 지나 텔 브엘쉐바로 들어섰다.
거기서 국립공원을 마음대로 들어가는 자유이용권을 하나 샀다. 정박사님은 어디서 꺼냈는지 기자출입증을 들고왔다. 인정하지 않는 곳도 있지만, 여긴 받아 준단다. 거 참 신기하다. 이곳에 오래 살면, 그런 일도 있다. 입구에서 떠들썩한 미국사람들 한무리를 만났다. 자기가 일행을 미국에서 끌고 온 목사라며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있었다. 무척 쾌활한 사람이었는데, 정박사님이 히브리대에서 학위를 했다니 성경에 관해 묻는다. 시므이에 관해 물은 건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대답을 못했다. 다시 보면, 이름을 일러줄건데 말이다. 그런 걸 뭘 물어보나, 사무엘서만 읽어봐도 아는 건데 말이지. 그 사람은 이스라엘은 놀러 와도, 성경은 안읽나부다.
텔 입구에는 수도가 있고, 거기서 찬물이 나왔다. 이런 사막에 찬물이라니. 뭐랄까, 텔 지하에 있는 수조와 연결해서 상상력을 키우라는 건지, 아니면 현재 이스라엘의 관개 시스템을 자랑하는 건지, 그건 모르겠다. 땡볕이 내려쬐기 시작했다.
더위를 무릅쓰고 텔 위로 올라갔다. 텔은 주전 8-9세기의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로 따지면 왕정 초기다. 아마도 여기 산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독립적인 왕이 다스리는 동네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네게브 광야 한 가운데 이런 작지만 규모가 있는 성읍을 세웠다는 게 대단하다.
어떤 이들은 브엘쉐바에 아브라함의 흔적이 있는지 묻는단다. 워낙 오래 됐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상관없다는게 정박사님의 말이다. 아브라함은 목자였고, 양을 쳤다. 잠을 잤어도 천막에서 잤을 것이고, 어떤 구조물을 세우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 어찌 아브라함 시대의 물리적인 흔적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건 그의 흔적을 지닌 건물이 아니다. 대기에 떠도는 그의 호흡과 양떼를 향한 외침을 이곳에서 듣는 것이 필요하다. 그가 무지 먼 옛날에 호흡했던 대기를 지금 나도 들이키고 있다. 그러면 그걸로 되었다.
텔에서 네게브 사막을 돌아보던 정박사님이 묻는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비옥한 메소포타미아를 떠나게 하셨을까? 다른 대답도 있겠지만, 광야에 서면 답은 한가지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비옥한 땅에서는 사람들이 절박하지 않다. 신도 여럿이다. 척박한 곳에서는 사람이 절박해진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절대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한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말했듯이 결국 인간은 한계상황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