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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월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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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칼럼] 김밥 풍경

박영실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수필에 등단했다. 시인, 수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수필,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하고 있다. 목회하는 남편과 동역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E-mail: [email protected]
 

유년시절 소풍 갈 때마다 꼭 필요한 준비물이 있었다. 즐거운 마음과 김밥이었다. 소풍 가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을 때면 엄마들의 솜씨가 오롯이 담긴 김밥 풍경을 잊을 수 없다. 그 아련한 추억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김밥을 좋아한다. 김밥을 마주할 때면 유년시절의 편린이 떠오른다. 김밥 재료를 준비하는 엄마 곁에서 엄마의 정교하고 정성이 담긴 손놀림 하나하나를 시선에 담아두었다. 소풍 전날 마음이 들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던 기억들은 지천명이 지난 지금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김밥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은 우리 삶을 닮았다. 김밥 재료들은 각각 자기의 맛을 품되 다른 재료들과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독특한 맛을 낸다. 김밥의 모든 재료를 감싸 안는 것은 물론 김이다. 김의 포용력은 다양한 재료들을 하나의 품 안에서 아우르는 위력이 있다. 다른 재료들은 그 안에서 자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재료들 본연의 맛과 특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 안에 모이면 개성을 내려놓는 듯하다. 자신의 맛과 향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것이 김밥이 품을 수 있는 맛이다. 김 안에서 재료들이 분열하면 김밥의 형태가 일그러지고 그 맛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김과 재료들이 하나 되어 각자 자신의 몫을 다할 때 김밥만의 향기가 있다.

  김밥 재료들이 각각 있을 때는 특별한 의미가 없지만 김밥 재료로 사용될 때 의미가 부여되는 것들이 있다. 김밥은 약한 재료들이 연합해 하나의 음식을 만드는 특징이 있다. 평범한 재료들이 한곳에 어우러져 김밥이라는 하나의 음식이 되는 특별하고 묘한 풍경이 참 좋다. 다양한 맛을 품은 각각의 재료들이 넓은 치마폭 같은 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수런거리는 풍경이 사랑스럽다.

  김밥은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많은 사람을 평등한 신분으로 결속하는 묘한 힘이 있다. 어떤 신분이나 직책도 무색하게 만든다. 김밥 앞에서는 그렇다. 정장을 차려입고 격식을 갖추고 먹어야 하는 부담이 없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하다 언제든지 김밥집에 들어가 부담 없이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수수하고 포근한 풍경이 좋다. 김밥을 대할 때, 엄마의 품에 안겨 엄마와 얼굴을 마주하며 해맑게 미소 짓는 아기의 모습 같은 평화로움과 안식이 있다.  

  잘 펴진 김 위에 고소한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참기름을 적당히 바른다. 참기름을 머금고 있는 김 위에 각양 종류별로 재료들을 얹어 김의 고즈넉한 치마폭에 싼다. 재료들은 김의 넓은 품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된다. 김 안에 모이면 김밥 재료의 빛깔과 모양과 형태가 어떠하든 각각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서로 넉넉하게 덮어주고 품어준다.

  김밥에 단무지가 빠지면 왠지 허전하고 김밥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김밥의 주인공은 단무지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단무지는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노란 단무지 옆에 나란히 와서 줄을 서는 주황빛 당근, 푸른 자태를 띠고 넓은 치마폭을 가지런히 접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시금치가 있다. 돌돌 말아 썰어 지단을 만든 치자 빛 달걀이 김밥의 풍미를 더해준다. 땅속의 에너지가 오롯이 담겨 있어 씹는 맛이 일품인 우엉조림과 상큼한 향을 품고 김 안에 모여 있는 재료들을 하나 되게 하는 오이가 있다. 오이를 씹을 때 입안에 퍼지는 향과 그 맛은 미각세포를 전율케 한다. 김밥이 쉽게 부패 되는 것을 방지하는 매실은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김밥 재료들 본연의 맛과 향이 김 안에서 묘한 맛을 낸다.

  김밥을 마주하며 오케스트라와 오버랩 되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각자 맡은 악기의 역할이 있지만 자기만의 음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른 단원들이 연주하는 악기들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소리를 조율하고 조화를 이룬다. 김밥은 각 재료들마다 그 맛을 간직하되 입안에서 음식의 오묘한 오케스트라 협연을 한다. 김밥 재료들이 독창회나 독주회가 아닌 협연을 한다는 점이 아름답다. 나의 음만을 내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면 참 좋으리라.

자신의 고유의 개성과 특성을 간직하되 공동체 안에서 유연하게 연합하고 하나되 는 사람들 곁에는 사람들이 머문다. 생명력이 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생각과 성향을 내려놓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기를 갈망한다. 주님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 되는 공동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모습이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영원토록 머무시리라 믿는다.

조만간 김밥을 만들어야겠다. 엄마의 밥 향기가 오롯이 스며 있는 김밥을 만들며 추억의 정원을 산책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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