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은 인간의 모든 기대와 소망을 단번에 끊어버린다. 우리가 뭔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다. 죽는 순간 모든 것이 종결된다. 죽음은 죄의 결과로 심판 받은 인간이 자기의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원래 자기 자리가 어디인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 무기력 상태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기력하게 우는 것 밖에 없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나인성 과부는 남편을 잃고 울었고, 이제는 아들마저도 잃고 울고 있었다. 아들을 잃고 울고 있는 이 과부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울지 말라는 것이었다.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울지 말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울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울지 말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울지 말라는 말이 왜 위로를 주지 못하는가? 말만 하고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울지 않을 조건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위로는 감정적인 위로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를 향해서 일어나라고 명령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의 주권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했을 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눅7:15) 여기서 두 가지를 봐야 한다. 첫번째, 죽었던 자가 살아났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정복하신 생명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사역하실 때 죽은 자를 세 번 살리셨다.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나사로이다.
두번째, 아들을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이 여인은 계속해서 빼앗기는 인생을 살아왔다. 남편을 빼앗기고 과부가 되었다. 이번에는 아들을 빼앗겼다. 아무도 그것을 막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와서 그것을 막아주셨다.
이 사건을 본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눅7:16)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고통을 겪을 때마다 찾아오신다.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고통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찾아오신다는 말이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 백성을 찾아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어 중에 가장 강력한 언어가 바로 눈물이다. “남자가 모든 합리적인 이치를 늘어놓는다 해도 여자의 눈물 한 방울에 비길 수는 없다.”<볼테르> 눈물은 하나님의 주신 가장 큰 축복이기도 하고, 가장 큰 무기기도 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눈물을 주신 것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하나님께 쏟아놓기 위함이다. 우리가 사람에게 흘리는 눈물은 진정한 위로 받지 못한다. 위로를 받아도 감정적인 위로 밖에 받지 못한다. 그냥 눈물은 사탄의 권세를 이기지 못한다. 흑암의 권세를 깨뜨리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헛되지 않다. 위로받을 뿐만 아니라 그 눈물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한다. 예수님의 이름 부르고 우는 기도는 능력이 있다. 예수 이름부르고 우는 기도는 사탄이 무너진다. 흑암의 권세가 힘을 잃는다.
눈물은 가장 깊은 기도의 언어이다. 예수님은 과부의 슬픔의 눈물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한나의 눈물을 보셨다. 말로 쏟아낼 수 없어서 입술로만 쏟아내는 기도의 눈물을 보셨다. 사무엘을 주시고, 대적인 브닌나를 이기게 하셨다. 하나님은 두려움과 아픔으로 흘리는 에스더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셨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침상을 적시고 우는 다윗의 눈물을 보시고 성령을 거두지 않으셨다.
자기의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속에 가두어 두면 병이 된다. 꾹꾹 눌러 참고 있으면 그것이 독소가 되어서 우리 몸과 마음을 다 병들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쏟아내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병든다. 답답한데 울 수 없고, 막혀 있는데 부르짖지 못하면 영적으로 무너진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울 수 없게 한다. 쏟아놓지 못하게 한다. 냉냉하게 한다. 기도를 막히게 한다. 하나님과의 소통을 막아 버린다. 그래야 절망과 고통 또는 두려움과 소심함 또는 탐욕과 욕심으로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신다. 간절함이 사라지고, 답답함이 꽉 차있고, 기도가 되지 않고, 감동과 은혜가 다 말라버렸는가? 대적 기도하면서 그 답답함을 깨뜨려야 한다. 기도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다 물리치고 다시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라. 2026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는 은혜가 함께 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고통을 겪을 때마다 찾아오신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 백성을 찾아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눈물은 가장 깊은 기도의 언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