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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1월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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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보 목사]우리의 한계는 하나님의 시작

김귀보 목사 큰나무교회 담임 내러티브 설교 연구소 소장 말씀 목회 공동체 Staff 울산 동신 장로교회 부목사 새문안 교회 대학부 담당 저서: <너의 길을 멈추지 마라> CLC 공저: <슬로우 바이블> 두란노 현 Southwestern Seminary 목회학 박사 과정 중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대원(M-div) 경상대학교 경영학(BA)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서 고된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바로의 핍박은 점점 더 강도가 높아졌다. 이런 와중에 레위지파의 한 가정에 아기가 태어났다. 바로의 명령 대로 하자면 아기를 나일강에 빠뜨려야 했다. 그러나 도저히 아이를 죽일 수 없었던 한 부부는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을 했다.

아이가 잘생긴 것을 보고 숨겨서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출2:2) 아기를 보고 모성애가 발동했다고 보면 된다. 이런 부모의 선한 마음, 부모의 기대가 하나님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결단도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현실의 어려움은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노력은 아름답고, 때론 참 좋은 열매를 맺기도 한다. 그러나 좋고 선한 일이라고 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야 하는 고된 과정을 거처야 한다.

결국 이 부모는 3개월만에 두손을 들어버렸다. 거기까지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2:3) 결국 갈대상자에 역청과 나무진을 바르고 아이를 나일강에 띄우기로 결정을 했다.

여기에 나오는 갈대상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바>는 방주를 의미한다. 노아의 방주도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이 아이의 부모가 갈대상자에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는 것은 방주를 짓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구원의 방주(갈대상자)에 아기를 담아서 나일강에 띄웠다. 이것은 그냥 갈대상자를 담아서 나일강에 띄운 것이 아니다. 기도하면서 갈대상자로 구원의 방주를 만들고, 그 아기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린 것이다.
인간의 노력은 언제나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곳에서 우리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한계에 부딪히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무기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모자란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은 초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면 된다. 그 이상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다. 우리의 영역에서 벗어난 곳에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을 만난다. 우리의 능력이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을 축복이다. 인간이 생각대로 노력대로 사는 것은 불행이다. 내가 하는대로 다 되면 바로 교만해진다. 내가 노력한대로 안되면 바로 좌절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갈대상자에 담아서 나일강에 띄운 아기는 바로의 딸에게로 흘러갔다. 바로의 딸에게 발각되면 그 아기는 바로 죽은 목숨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출2:6) 바로의 딸이 그 아기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죽여야 한다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하나님이 바로의 딸의 마음을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로의 딸은 그 아기를 왕궁으로 데려다가 젖을 먹이고 자기의 아들로 삼는다. 이 아이는 바로의 딸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 젖을 먹고 자라고, 바로의 왕궁으로 들어가서 왕자로서의 모든 혜택을 누리게 된다.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출2:10) 하나님의 역사는 참 놀랍다.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려고 하는 바로의 딸을 통해서 모세를 구원해 내시고, 바로의 왕궁의 모든 재물과 학문과 시설을 사용해서 모세를 기르시고 준비하신다. 하나님의 언약을 끊어버리려고 하는 바로를 하나님이 비웃으시는 것이다. 시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2:1-4)

이 모든 것이 한 연약한 여인의 기도와 하나님께 맡김을 통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아무런 힘이 없는 이 여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갈대상자로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렸다. 우리의 무능함, 무지함, 비참함을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우리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한계에 부딪히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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