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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5월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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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보 목사] 받아들여진 사람들

김귀보 목사
큰나무 교회 담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적절한 단어가 바로 “받아들여진”이라는 단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모든 것을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신 분도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분도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주기로 결정하신 분도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일방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 주실 때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에 따라서 방법을 달리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가진 부의 정도, 권력이나 유명도, 지식이나 능력, 착함과 성실함의 정도, 예의 바름과 진실함의 수준에 따라서 구원의 방법이 달라지지 않았다. 오직 단 하나의 방법, 십자가의 용서의 은혜였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때 좀 더 수월하셨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인간의 기준이고, 인간의 착각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예수님은 우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다.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다 쏟고 죽으셔야 했다. 죽음의 권세를 깨부숴 버리고 부활하셔야 했다. 그 과정을 다 거치셔야 우리 죄가 사해지고,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 서면 모두가 중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십자가 앞에 경범죄, 중범죄, 죽을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사형 받아 지옥 가야 하는 죽을죄밖에 없다. 여기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모두 이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받아들여진 사람들이다. 내 신앙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내 믿음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내가 더 헌신적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자랑을 실제로는 하고 있다. 나는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는데 저 사람은 아직도 못 깨닫고 있다고 말하면서 은근히 자기를 자랑한다. “나 정도 되는 사람도 이렇게 기도해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데, 저 사람은 나보다 못한 사람이 기도도 안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나”라고 은연중에 그 사람을 자기 아래로 둔다. 나는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서 이렇게 좋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서는 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못 깨달을 거야”라고 하면서 비판한다.

모두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에서 오는 착각이다. 나를 용납하신 하나님은 충분히 그 사람을 용납하시고도 남으신다. 나에게 은혜를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도 충분히 은혜를 깨닫게 해주신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신 하나님은 그 사람도 충분히 받아주시고도 남으신다.

나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 내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 내가 보기에 한심한 사람을 보며 비판과 정죄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나를 받아들여주신 하나님이 사랑과 은혜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더 한 죄인이었고, 더 못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보다 더 낫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 나에게 주신 선물 때문이지, 내가 원래 가진 것 때문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야기한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 맞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하는 것, 용납하는 것, 이해하는 것,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나를 받아들이신 하나님이라면 그들도 충분히 받아들이고 남음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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