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4 F
Dallas
일요일, 7월 13, 2025
spot_img

[최승민 목사] 배경과 더불어 읽는 성경(16)

길갈의 영성

최승민 목사 플라워마운드 교회 동역목사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이스라엘이 제일 먼저 진을 친 곳은 어디였을까요?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넌 이후 여리고의 동쪽 경계 길갈에 진을 쳤다(수 4:19)고 언급합니다.
앞선 신명기 11장에서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위치를 설명할 때, 길갈이 언급되기는 하지만(신 11:30),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길갈 땅을 밟은 것은 요단 강을 건넌 직후가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길갈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제의 장소로 자리를 잡았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도 세겜에 위치한 중앙 성소를 넘어서 길갈, 미스바, 벧엘을 순회했다는 기록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삼상 7:16).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성소 개념이 온전히 자리잡기 이전, 길갈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의 장소였습니다. 그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지 예루살렘으로 성소 중앙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길갈은 계속해서 종교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아모스 선지자는 길갈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가리키며,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암 4:4)”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그러한 곳에서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님으로 결국은 망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암 5:5).
성경에서 길갈이라는 지명이 이토록 익숙하게 등장하기에 길갈을 여느 도시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면 길갈에 대해 재고해야 할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출애굽하여 마침내 요단 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진을 친 곳에 길갈이었습니다. 길갈에 진을 친 날이 “첫째 달 십일(수 4:19)”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달 십사일 저녁(수 5:10)”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킨 이후에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정복을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 여리고 정복을 위한 전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른 첫번째 전투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길갈에 진을 칠 때 전투를 치르지 않은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투를 치르지 않고 길갈에 진을 칠 수 있었던 것은 길갈에 먼저 살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환영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서에서 길갈이 처음 언급될 때, 길갈의 위치에 대해 “여리고 동쪽 경계(수 4:19)”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길갈이라는 특별한 지명이 아니라 여리고 지역의 동쪽 경계에 해당하는 부분을 길갈이라고 불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길갈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노지였던 셈입니다. 미리 정착해 사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요단 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길갈에 진을 칠 수 있었습니다.
길갈은 문자적으로 ‘돌로 이루어진 고리(Circle of Stone)’을 의미합니다. 이 지명의 유래는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많은 사람들은 아마 그 이름이 지형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길갈 지역은 요단 강이 자주 범람하는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많은 비가 내려 유대 산간 지역에서 요단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길이 생성되는 지역이었을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길갈 주변에는 물살에 깎여 둥그런 모양을 띈 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고, 주변에 놓인 돌 뿐만이 아니라 세월의 풍화와 물결이 깎은 여리고 동편의 아라바 광야 역시 여러 겹으로 겹쳐진 둥그런 고리 모양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 아무런 저항 없이 정착했다는 것은 그곳이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기에 좋지 않은 곳이었음을 암시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 길갈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리고를 정복한 후에, 훨씬 진을 치기 좋고 안전한 여리고로 자신들의 진을 옮기지 않습니다. 여전히 길갈에 머물며 다음 전투를 준비합니다. 아이 성을 정복한 이후에도 그곳으로 자신들의 진을 옮기지 않습니다. 매번 전투를 치르고 다시 길갈로 돌아옵니다. 훨씬 좋은 조건의 위치로 진을 옮길 수 있었음에도 말이지요.
이러한 길갈의 배경을 통해 보는 이스라엘의 행보는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길갈이라는 노지에 진을 친 이스라엘은 놀랍게도 모든 가나안 정복 전쟁을 다 마칠 때까지 외부의 공격을 받지 않습니다. 더 좋은 방어 체계가 잘 구축된 여리고 혹은 라기스와 같은 곳으로 진을 옮기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이 지키시기에 보호를 받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데, 이왕이면 더 좋은 형편에서, 더 편한 자리에서 일을 하는 것이 좋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기 전까지 길갈을 떠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나의 지혜와 생각으로 더 좋은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거하는 삶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