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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5월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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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 목사] 기적을 일으키는 삶

장량 목사
현. 라이트하우스 달라스(프리스코) 담임목사
현. 달라스 투게더 지도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과 (B.A)
사우스웨스턴 신대원 (M.Div)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100% 온전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과 같은 거룩한 영적인 존재로 우리를 지으셨다.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는데, 그 형상에는 하나님의 존재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성품도 똑같게 지으셨다. 하나님의 성품 중에 가장 대표적인 성품이 무엇인가? 바로 사랑이다.
삼위의 하나님께서 서로 가장 온전한 사랑을 하시며 하나가 되시는 것과 같이 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며 교제하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보면 거기서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이야기이다.
아담이 먼저 지음 받고 그 후에 하와가 아담의 뼈를 통하여 지음 받았을 때, 아담은 하와를 보고 이렇게 고백한다.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 이 말은 ‘너와 나는 동등한 같은 존재이다’라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나는 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아담과 다른 하와를 자신과 동등한 대상, 즉 너와 나를 하나 되게 만드는 근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바로 사랑이다. 아담이 하와를 끔찍하게 사랑했기 때문에 어떤 조건과 상관 없이 아담은 하와를 자신과 하나라고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객관적인 측면으로 보면 불합리한 부분들이 있다.
첫째로, 하와는 아담의 뼈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이 말하면 하와는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담은 자신의 뼈로 지음 받은 하와에 대하여 그 어떤 소유권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며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선포한다. 왜? 사랑하니까!
둘째로, 하와는 아담보다 늦게 지음 받았다. 정확하게 어느정도 시간의 차이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담은 하와보다 더 많은 일을 했고, 더 많은 세월을 보냈고, 더 많은 밥 그릇을 비웠다. 더 많은 일을 한 사람, 더 많은 것을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당연히 차별이라는 것이 주어진다.
하지만 아담은 자신이 무엇을 더 많이 했건 상관 없이 하와를 자신과 같은 위치에 놓고 ‘너와 나는 하나다’라고 선포한다. 왜? 하와를 사랑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의 돕는 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담은 리더이고 하와는 그를 돕는 도우미라고 우리는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담은 하와를 자신의 일을 돕는 비서 정도로 하와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모든 것을 동등한 관계로 같이 해 나가는 동반자로 인정했다.
왜? 하와를 사랑하니까!
이렇게 성경의 시작은 사랑이 어떤 삶을 만들어가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저주로 찾아온 노동은 사랑의 능력 보다는 자신의 열심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강한 것 같지만 강해질 수록 오히려 주변의 것들이 파괴되는 삶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래서 노동은 신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열심은 언제나 나와 주변의 관계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그렇다.
이 인류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이고 인간의 노동은 너와 나를, 우리와 너희를, 민족과 민족을, 나라와 나라를 갈라놓는 차별의 역사가 되었다. 누가 더 우월한가? 누가 더 먼저인가? 누가 더 많이 했나?가 차별을 만들었고, 그 차별은 깨기가 불가능하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그 차별의 시스탬 안에서 여전히 신음하며 아파하고 있다.
여전히 세상은 행복, 평화,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열심히 하면 할 수록 서로의 관계가 깨어지는 전쟁과 억압과 차별의 역사만 이어질 뿐 전혀 세상은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죄로 인하여 만들어진 노동 중심 세상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바로 노동의 회복이고 그리고 관계의 회복이다.
노동의 목적이 내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으로 회복되게 되었고, 또한 노동의 방법을 나의 열심과 노력이 아닌 사랑의 수고라는 방법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회복시키는 방법은 딱 한가지다.
바로 사랑의 수고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다름이, 차별이 하나되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때이다.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이 내 이웃에게 전해질 때, 그 때 회복이라는 기적이 일어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장 35절)
나는 오늘도 누구를 위해 사랑의 수고를 하였는가? 그 사랑의 수고(노동)는 반드시 기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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