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뇌의 10%만 사용한다.” 한때 영화나 자기계발서를 통해 널리 퍼졌던 이 말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현대 뇌 과학의 발전은 이것이 단지 상상력의 산물일 뿐,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임이 증명했습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결과, 인간의 뇌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조차 거의 모든 영역이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종종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근거해 견고한 자신만의 성을 쌓아 올립니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정보를 단순화하고 범주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선입견’이라는 지름길을 선택하곤 합니다.
선입견은 사람들로 하여금 편견에 빠지게 해서 때로는 진실을 마주할 기회마저 놓치게 하곤 합니다. 이는 신앙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 나사렛에서 벌어진 사건은 신앙의 영역에서 선입견이 얼마나 강력하고 비극적인 장벽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사역 중에 고향 갈릴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에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고향에서 저런 위대한 인물이 나왔나? 하는 자부심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경이와 감탄은 순식간에 차가운 배척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마을에서 병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다른 마을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배척했을까요? 가르침에 놀라고 기적을 보고 들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이었까요? 그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6장3절에서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그의 형제와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냐?”(막 6:3)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경이로운 지혜를 전하는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릴 적부터 자신들과 함께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자라난, ‘목수의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당시 목수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노동자들에 해당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고칠것이 없냐고 물어가며, 가구나 배에 필요한 어구들을 수리하는 그저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호칭도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호칭인 요셉의 아들 대신 마리아의 아들이라 부른 것은, 아마 요셉이 이미 세상을 떠나 마리아, 편모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이거나,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오해가 그들속에 여전히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익숙함과 사회적 편견이 뒤섞인 선입견은 그들의 눈과 귀를 완벽하게 가렸습니다. 결국 눈앞에 펼쳐진 생명의 기적을 스스로 걷어차 버렸습니다.
성경은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다”(막 6:5)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의 불신이라는 견고한 장벽이 전능한 하나님의 역사를 스스로 제한한 것입니다.
이 나사렛에서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서늘한 경고를 던집니다. 우리의 삶에도 수많은 ‘나사렛 사람들’의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사람을 외모나 학력, 재산, 직업이라는 편리한 잣대로 재단합니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요즘 것들’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합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꼰대’라는 단어의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특정 학교,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편견의 벽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입견의 칼날은 타인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 더욱 깊고 날카로운 상처를 내어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기도 합니다.
80세의 모세 앞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소명을 주셨을 때, 그는 완강히 버텼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현실과, 스스로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에 갇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기 불신은 깊었습니다. 그가 품고 있던 선입견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앞에서 순종을 얼마나 어렵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스스로를 ‘나는 능력이 부족해서 안 돼’, ‘이미 늦었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와 같은 자기-선입견의 감옥에 가둘때가 많습니다.
‘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라는 타인을 향한 판단,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야’라는 자신을 향한 낙인,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가능성의 문을 닫고 관계의 벽을 세우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마저 가로막는 선입견이라는 안경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삼상16:7).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과거의 실패나 좌절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입견이라는 안경을 벗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보고 나를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당신의 시선을 가리고 있는 낡은 선입견의 안경은 무엇입니까? 그 안경을 벗어 던질 용기를 낼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흐릿했던 세상의 참모습과 그 안에 숨겨진 무한한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