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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11월 21, 2024

[윤대영 교수] 당신의 기도, 얼마나 즐거운가?

윤대식 교수
– 센트럴신학대학원 신약분과 교수
– 고려신학대학원(M.Div.)
– Cairn University, School of Divinity(M.S. in Bible)
–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Th.M.)
–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 -현 새비젼교회 담임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이 가진 특권이요 또한 축복이다. 특권은 자주 사용해야 의미가 있고, 축복은 누릴 때 즐거움이 되듯이 기도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사역에 쫓기다 보면 자칫 이 축복의 시간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사역은 눈에 보이는 일인데 기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가끔 사역자들은 자신의 기도와 사역의 균형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사역이 많아질수록 시간이 부족해지지만 그만큼 기도의 무릎도 더 필요하다. 기도와 사역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이는 언제나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모든 사역이 영의 일이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놀랍게도 우리 시간의 질을 높여주고, 능력의 크기를 더해준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다. 이는 기도가 가진 신비이다. 이런 기도는 분명 즐거움으로 해야 할 특권이요, 누려야 할 축복이다. 그러므로 리더는 기도가 또 하나의 일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즐거움으로 누리는 특권과 축복이 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묻고, 점검해 보아야 한다. 당신의 기도는 얼마나 즐거운가?

필요에 이끌리는 기도
사역하는 리더들은 많은 경우 필요에 이끌리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 효과적인 사역에는 비전이 있어야 하고, 비전에 맞는 계획도 있어야 하고, 그 비전을 수행할 조직과 사람도 있어야 하고, 또한 비전에 걸맞은 열매도 맺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기도를 통해 빚어져 간다. 그래서 늘 사역의 필요가 기도의 자리로 이끈다.
또한 리더는 성도들의 필요 때문에 기도하게 되기도 한다. 필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확신 때문에 제자훈련에 헌신하고 있다. 그런데 훈련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성도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과 함께 기도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 어떤 훈련도 사람을 온전히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딤전4:5)고 권면한 것은 진리이다. 그래서 성도의 변화와 그들의 필요 때문에 매일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
때로는 리더가 사역에 필요한 영적 능력과 은혜를 공급받기 위해, 또한 자기 영혼에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수많은 필요에 의해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면 기도가 또 하나의 사역이나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리더에게는 필요에 이끌려 기도하는 그 이상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즐거움에 이끌리는 기도
필요에 떠밀려 기도하는 시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늘 소망하는 기도가 있다. 그것은 ‘즐거움에 이끌리는 기도’이다. 우리는 찬양할 때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라고 찬양한다. 하지만 기도하는 시간이 정말 자신에게 가장 즐거운가? 이 찬양을 드릴 때마다 왠지 마음이 무겁다. 왜냐하면 영적 리더인 나에게도 기도하는 시간이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목회자나 리더는 즐거움보다 필요에 의해 더 많이 기도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즐거움으로 기도하는 특권과 축복을 누리고 싶은 열망이 있다.
매일 새벽을 깨우며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렇게 기도로 시작하는 하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겁다. 온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로 씨름한 뒤 얻는 마음의 평강과 환희는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것이다. 대개는 기도가 또 하나의 사역이나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기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에 기쁨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래서 기도가 일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즐거움에 이끌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교제이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시간이요, 우리의 신뢰를 드리는 시간이요, 우리의 사랑을 드리는 시간이다. 즉 하나님과 관계를 세워가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기도는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마땅하다. 사랑하는 이에게 나아가듯 흥분과 감격과 기쁨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기도의 기쁨이, 영적 즐거움이 자신을 기도의 자리에 이끌도록 더욱 훈련해 보자.

영에 이끌리는 기도
기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면 영에 이끌리는 기도이다. 영에 이끌리는 기도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기도라 할 수 있다.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엡 6:18)라고 권면한다. 우리의 기도는 항상 기도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기본 원리이지만 좀 더 바울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 보자.
바울은 방언 사용에 대한 지침을 주면서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5)고 권면한다. 바울은 우리의 기도에서 영과 마음이 함께 하는 기도의 필요성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가 영과 진리로, 즉 영적이며 전인적이어야 하듯이 기도도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기도뿐 아니라 진실로 영으로 기도하는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안에서 성령이 기도의 주체가 되어 하는 기도를 경험해야 한다. 기도의 내용도 성령의 뜻대로 인도하시고, 기도의 언어조차도 성령께서 뜻대로 사용하시는 기도이다. 영적 리더에게 이런 기도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늘 이런 기도의 은혜를 사모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 은혜를 누린다.

무릎으로 배우라
성경이나 교회사에 보면 기도의 즐거움과 영으로 기도하는 은혜를 누렸던 지도자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무릎으로 하는 기도훈련이 있었고 기도의 깊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의 능력과 기도의 즐거움을 누리곤 했다. 이런 기도의 사람 중에 미국의 초기 인디언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가 먼저 떠오른다. 지난 역사 속에 좋은 리더는 항상 기도하는 리더임은 분명하다.
누구든지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영적 생활은 자신의 기도의 수준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 기도에 관한 많은 서적을 읽고, 기도의 이론을 알고, 여러 기도의 모델을 연구하는 것으로 기도가 훈련되고 기도의 능력이 깊어지지 않는다. 기도의 참된 즐거움, 기도의 영적 능력, 더 넓고 깊은 기도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참된 특권과 축복을 아는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 꿇는 기도의 무릎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기도의 마음을 주신다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보자. 새벽을 깨우든지, 밤을 지새우든지 하나님께 충분한 기도의 무릎을 드리자. 그리고 다가오는 사역에서는 필요에 의한 기도를 뛰어넘어 진정한 기도의 즐거움과 영에 이끌리는 기도의 은혜를 맛보며 또한 사역에도 좋은 열매가 가득하기를 소망해 본다.

[1] 조나단 에드워즈,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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