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이 ‘기도’를 ‘응답’이라는 단어와 연결해 생각합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약속이 여러 차례 등장하고, 기도는 분명 응답의 열쇠가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오직 ‘응답’이라는 결과 중심으로만 이해하면 부작용도 생길 수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느끼면, 오히려 기도를 포기하거나 멀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문제가 있을 때 응답받으려고 하는 것이고, 나에게는 문제가 없으니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태도 역시 기도 생활을 위축시킵니다. 하지만 성경은 기도해야 할 더 깊은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자가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은 성도들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선언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임한다는 약속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안이 별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안은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재물과 명예, 쾌락을 좇는 이유는 결국 마음 놓고 평안히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이 부를 얻거나 쾌락을 경험해도 진정한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힘써 얻은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연하게 여기거나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문제 해결이 더디거나 즉각적인 변화가 없어도, 하나님이 임재해 주시는 평안이 마음을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한나는 심각한 가정문제에 시달렸습니다. 남편이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둘째 부인을 들였고, 둘째 부인 브닌나는 한나를 업신여겼습니다. 더구나 남편은 제사장 신분이었음에도 이런 상황을 방치했으니, 한나의 마음고생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고통 가운데 한나는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이를 본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술에 취했다고 오해합니다. 이 일로 한나는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었지만, 끝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엘리 제사장은 “평안히 가라.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허락하시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한나는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삼상 1:18)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한나는 기도함으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을 얻은 것입니다.
한나의 경험처럼 오늘날 우리도 기도할 때, 내 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문제를 다시 볼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는 커다란 문제처럼 보이던 것도, 하나님 시각으로 바라보면 한없이 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는 고통이나 어려움이 여전해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호레이쇼 스패포드는 시카고의 성공한 변호사이자, 무디 목사의 절친으로 무디교회에서 회계 집사와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43세 때 시카고 대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 급성 전염성 피부질환으로 아들마저 떠나보내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가족이 휴식과 회복을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나려 했습니다. 스패포드는 급한 일로 후에 승선하기로 하고 아내와 네 딸이 먼저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대서양에서 철갑선 라키언 호와 정면 충돌로 226명이 바다에서 죽고 맙니다. 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아내만 홀로 구조되었습니다. 9일 뒤에 웨일즈 카디프에 도착한 부인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전보를 남편에게 보냅니다.
스패포드는 아내를 만나러 가는 배 위에서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밤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주님,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던 제게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허락하십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스패포드에게 신뢰와 평안을 부어 주셨습니다.
다음 날, 그는 시를 썼고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기도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고 고백했습니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평안할 수 있는 힘은 기도할 때 임하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옵니다.
기도는 응답이라는 값진 선물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것이 응답되기 이전에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눈을 열어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도, 기도하는 이들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문제가 있을지라도 마음에 찾아오는 두려움과 불안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로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